주담대 막히자 전세대출 선회
보증금 담보로 생활안정자금 신청
반전세 선호 낮아진 것도 원인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전세가격이 약세를 보이는데도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이 56조원을 돌파하는 등 급증해 주목된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유일한 숨통인 전세자금 대출로 수요가 몰린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전세물량이 나오면서 ‘반전세’ 보다는 목돈이 드는 전세로 일부 돌아선 것도 이유로 꼽힌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ㆍ신한ㆍKEB하나ㆍ우리ㆍ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7월 말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56조346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55조489억원)보다 2.36%(1조2977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선 43.64%(17조1177억원)나 늘었다.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2016년 8월 3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40조원, 올해 3월 5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달에는 전월 대비 증가율이 지난해 6월(2.25%)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앞으로 매달 2%만 증가해도 올 11월에는 대출 잔액이 6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자금 대출이 증가한 것은 사실 전세가격 추이와는 무관하다. KB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주택 전셋값은 지난 3월 이후 5개월 연속 전월대비 하락했다. 아파트 전셋값만 따지면 지난 13일까지 24주 연속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전세자금 대출이 전세가격 하락에도 증가한 것은 최근 대출규제의 영향 때문으로 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등 기존의 대출에 대한 규제가 강해져 상대적으로 대출이 쉬운 전세대출로 수요가 옮겨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정부가 신(新)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등 주담대 규제를 시행하면서 가계의 자금 조달이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하지만 대출 규제에서 전세자금 대출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전세기간 도중에 보증금을 담보삼아 받는 생활안정자금은 임차인의 계좌로 입금돼 주택 매매나 사업자금 용도로 전용하더라도 제한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반전세’(보증부월세)가 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임차인이 반전세보다는상대적으로 목돈이 필요한 전세로 옮겨간 경향도 전세자금 대출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저금리 시대에는 임대인이 월세를 받는 반전세를 선호한 상태에서 시장에서도 전세난 탓에 반전세 물량이 소화됐다.

하지만 최근 전세 시장 전반에 찬바람이 불면서 반전세가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준전세가격지수는 2015년 6월 97.2에서 지난해 3월 100까지 올랐다가 12월을 기점으로 하락, 지난달에는 98.5로 떨어졌다. 준전세가격지수가 하락했다는 것은 반전세의 수요가 감소했다는 뜻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전세자금 대출이 증가한 것은 정부의 주담대 대출 규제로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임대인이 생활안정자금을 통해 대출을 하거나 반전세가 전세로 돌아선 시장 상황 등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kate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