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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
(이경신 지음, 휴머니스트)=1993년부터 5년 동안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미술 수업’을 진행했던 작가의 미술수업 이야기. 할머니들과의 서먹했던 첫 만남부터 난생 처음 붓을 잡아본 할머니들의 그림 배우기 과정을 통해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와 고통이 어떻게 그림을 통해 드러나는지 보여준다. 하얀 캔버스에 조심스럽게 소녀와 꽃, 일본군과 배, 나무와 새를 그려나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목소리 증언 못지 않게 강렬하다. 보라색으로 둘러싸인 소녀에게 들러붙어있는 악귀, 캔버스를 압도하는 군화, 여전히 성노예라는 사회적 편견에 제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다소곳한 소녀의 모습은 더 안타깝고 아프다. 고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과 ‘책임자를 처벌하라’, 고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끌려감’등의 그림들이 그려지게 된 배경과 숨은 이야기도 들어있다. 작가는 여전히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합의한 우리 정부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본질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썼다고 털어놨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지름, 박진혁 옮김, 황소자리)=피비린내 없이도 공포를 고조시키는 아이슬란드가 배출한 스릴러 여제 이르사의 화제작. 1970년대 초 아이슬란드의 소년보호소에서 일어난 두 아이의 죽음이 40년 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는지 보여준다. 폭설로 온 세상이 덮힌 1974년 3월 초, 아이슬란드 북부크로쿠르 소년보호소 원장의 자동차 뒷좌석에서 10대 소년 두 명이 숨진 채 발견된다. 사인은 유독가스 질식사. 차량 배기구가 눈으로 막혀 일어난 사건으로 지역 치안판사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한다. 오딘은 정부 조사위원회가 40년 전 문을 닫은 소년보호소에서 학대나 인권유린이 일어났는지 조사하라는 일을 맡아 과거를 추적해나간다. 이야기는 과거사를 추적하는 오딘과 40여년전 그 밤 퉁퉁 부은 눈으로 모든 걸 지켜본 알디스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는 끝을 알 수 없이 내달린다.


▶그리스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살림)=사료와 상상력에 바탕한 독특한 역사서술로 독자들을 매료시켜온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이야기 무대를 그리스로 옮겨왔다. 우리는 흔히 서양문명의 한 축인 ‘그리스· 로마’를 한 통으로 여기지만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둘은 전혀 비교대상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로마 따위는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다. 단연 고대 서방 세계의 대표주자였다. 앞서가는 그리스를 조심스레 뒤따르던 로마는 그리스가 개혁하지 못한 어떤 것의 중요성을 알아채고 현실화하면서 제국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리스인 이야기’(전3권)는 ‘로마인 이야기’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에서 50여쪽을 할애해 쓴 그리스인 이야기의 확장·상세판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급속하게 융성했다가 빠르게 쇠퇴한 그리스를 민주주의의 탄생과 빛과 그림자를 통해 그려나가면서 동서 융합을 이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세계제국으로 마무리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싹트고 발전해간 요체로 ‘필요성’을 꼽는다.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 요구하는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개혁은 귀족정치를 타파한 솔론의 금권정치로 시작해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치, 클레이스테네스의 실력주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전시위기관리체제, 민주정치의 황금기인 페리클레스 시대로 이어진다. 각 단계마다 다양한 현실의 요구를 수용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얘기다. 사료와 현장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특별한 통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오노 나나미 스타일을 여기서도 만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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