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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예술은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죠
“이건 회의 주제에서 벗어난 얘긴데, 최근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꼭 관람하길 권합니다”

사비나미술관 신축공사관련 회의 진행 중에 이상림 공간종합건축 대표가 생뚱맞게 영화이야기를 꺼내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대표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내 인생의 영화’를 발견한 가슴 벅찬 흥분과 순수한 기쁨이 느껴졌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마치 아이처럼 자신의 특별한 경험과 감동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열망을 품는다는 것이다. 폭염이 절정에 이른 지난 주, 이대표가 강력 추천한 영화를 미술관 직원들과 단체 관람했다.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이자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의 대표감독인 88세의 아녜스 바르다와 프랑스의 사진작가, 거리예술가,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33세의 JR이 공동연출자로 호흡을 맞춘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근래 보았던 최고의 예술영화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두 예술가는 성별이 다르고 55살의 나이 차이에서 드러나듯 세대 간 격차도 크지만 예술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예술관이 같았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두 사람은 즉석사진을 찍고 인쇄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카메라 모양의 트럭을 타고 프랑스의 시골, 폐광촌, 목장, 항구 등을 찾아가는 긴 여정에 오른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보통사람들을 모델로 세워 촬영한 대형사이즈의 흑백초상사진을 일상의 터전인 집, 농장, 공장의 외벽, 화물용 컨테이너 등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협업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면 바르다와 JR은 곧 철거될 탄광촌에서 이주를 거부하고 홀로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광부의 딸이자 주민인 재닌을 만나 평생 광부로 살다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본화, 산업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힘없는 약자인 재닌의 편에 선다. 철거는 곧 마을공동체의 역사와 문화를 해체하고, 개인의 소중한 기억마저 빼앗는다는 그녀의 생각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두 예술가는 광부들을 기리고 최후의 저항자인 여성영웅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그녀의 붉은 벽돌집 정면에 재닌의 거대한 얼굴사진을 붙였다.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참여형 예술의 탄생 과정과 숨은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필자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22년 동안 미술관을 운영하면서도 풀지 못한 오랜 숙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예술이 필요한가? 예술이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 해답이 예술가나 미술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의 즉흥적인 말에서 나왔기에… 화학공장으로 출근하던 한 노동자가 벽에 붙은 동료들의 대형단체사진을 처음 본 순간 감탄하며 말했다. “예술은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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