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전문가 기고-김성봉 삼성증권 WM리서치팀장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증권회사에 입사해 이론이 아닌 시장경제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수요와 공급이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다. 시장경제라고 이론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공급은 과잉이 문제고 수요는 부족이 문제다. 결국 같은 말이다. 수요가 적어지면 공급은 많아 보이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을 꼽자면 당연히 수요다. 공급은 수요에 따라 증가와 감소가 후행적으로 나타난다.

공급은 공장이나 생산설비, GDP(국내총생산)의 설비투자 같은 숫자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한 번 만들어지면 오래 간다. 이에 반해 수요는 추상적이다. 수요는 곧 소비인데, 어제 만원 썼다고 오늘도 만원을 쓴다는 보장은 없다. 비싸지면 안 쓰기도 하고, 대체제로 바꾸기도 한다. 여유가 생기면 더 쓰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줄이는 것이 소비다.

경제나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수요(소비)를 정확히 추정할 수가 없으니,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지표를 볼 수 밖에 없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소득이다. 소득이 늘면 당연히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금융시장이 취업자수와 실업률에 민감한 것은 소득에 직결돼 소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 주식시장은 그렇게 매달 발표되는 미국의 비농가취업자수에 일희일비 했었다. 미국의 소비는 곧 글로벌 수요였다.

소득외에 소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자산이다.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 보유자산이 늘면 소비는 증가한다. 그래서 매월 주택착공건수, 매매건수, 케이스쉴러 주택가격지수 등 미국의 주택경기 지표도 그렇게 한 때 금융시장을 호령했었다.

지금 글로벌 경제를 한 번 보자. 먼저 공급을 보면, 공급과잉을 걱정하는 소리는 드물다. 오히려 부족이라는 단어를 더 들었던 것 같다. 원유시장도 그렇고, 불과 얼마 전까지 비철금속도 그랬다. 반도체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산 철강은 설비과잉이라고 하지만, 중국 정부가 몇 년째 강제 구조조정 중이다.

수요는 탄탄하다. 미국은 일자리가 넘쳐나고, 임금 상승도 감지된다. 일본은 구인난에 빠진 지 한참 됐다. 유럽도 경기가 살아나면서 실업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부의 효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2007년 고점을 넘어서 순항중이다.

그런데, 이 양호한 기반을 흔드는 외부 변수가 나타났다. 무역전쟁이다. 미국이 결국 자기에게도 큰 피해가 오는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매년 다양한 종류의 불확실성이 불거졌을 때, 결국 기본을 고집하는 게 옳은 전략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뤄야 경제가 안정된다는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무역전쟁과 같은 변수가 그 균형을 한번씩 흔들어 놓을 수는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흐름은 수 많은 충격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체적일 수 있다면 서 있는 모든 자리가 진실하다는 뜻으로, 주관이 분명치 않아 남의 생각에 이리저리 흔들리면 안 된다는 의미다. 펀더멘털을 믿고 견디는 인내가 필요한 때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