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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 사람] 황필규 변호사 “난민은 특별한 상황에 놓인 보통 사람일 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 중인 황필규 변호사는 “난민은 특별한 상황에 놓인 보통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7년 동안 운동 벌여 2012년 난민법 제정
-“정부가 불안감 빨리 해소했어야…혐오 방치”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2012년 우리나라에도 난민법이 제정됐다.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이었다. 법이 마련되면서 난민 신청자는 인정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됐다. 2013년엔 1574명이었던 난민 신청자 수는 지난해 9942명에 달할 만큼 한국을 찾는 난민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기반이 마련된 데는 난민 분야 공익 활동가인 황필규(50ㆍ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의 공이 컸다. 난민법의 ‘산파’ 역할을 한 황 변호사를 17일 서울 종로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제주도 예멘인 난민 사태를 거론하며 “처음 혐오가 형성될 땐 극복할 수 있지만, 혐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 여론이 돼버린다”면서 “혐오가 여론으로 안착하게끔 방치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을 꺼냈다. 제주도 사태는 우리 사회가 난민을 받아들인 뒤 겪는 최대의 진통이나 다름 없다. 올봄 예멘인 500여 명이 제주도에서 난민 인정 신청을 하고 체류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난민법을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70만 명을 넘겼다. 황 변호사는 “공포와 불안감이 확산될 때 근거없는 얘기라고, 예멘 난민 상황이 어떻고 난민의 의의가 무엇인지 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밝혔어야 했는데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난민과 상관없는 유럽의 폭력 사건이 난민 범죄로 둔갑하거나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입국했다는 등의 루머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난민을 수용하자는 주장이 감정적이라는 여론도 있지만, 황 변호사의 생각은 반대다.

그는 “모든 나라가 철저히 자국민만 우선했다면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진즉 돌아가셨을 것”이라며 “유럽에서의 범죄 몇 가지를 반대의 근거로 드는 건 한국인의 엽기적 범죄를 나열하고 한국인은 절대 다른 나라에 가면 안 된다고 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의 난민 체류 반대 여론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는 것도 우려되는 일이다. “우리가 완전히 무슬림에 적대적이 된다면 이슬람을 믿는 17개국 18억 인구를 적으로 돌리고 700만 재외 동포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라는 게 황 변호사의 지적이다. 

황필규 변호사는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를 언급하며 “처음 혐오가 형성될 땐 극복할 수 있지만, 혐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 여론이 돼버린다”고 정부의 신속한 진화와 설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그는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때도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당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쿠르드계 가족이 유럽으로 이동하던 중 배가 난파됐고,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에서 큰 동정 여론이 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도 국내 체류 중인 시리아 난민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두 달 후 파리 테러가 발생하자 상황은 뒤집혔다. 황 변호사는 “국정원에서 갑자기 ’시리아 난민 200명이 항공편으로 들어왔다’면서 우리도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겁을 주더라. 정권에 상관없이 우리 인식 자체가 취약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황 변호사가 난민 인권 분야에 관심을 가진 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직후인 2004년부터다. 어느 날 한국어로 된 난민 관련 문헌을 모두 읽어보기로 했다.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 “그땐 난민 관련 판례가 겨우 2개에 불과할 정도로 블루오션이었어요. 하루 만에 난민 변호사로선 국내 최고 전문가가 된 셈이죠.” 그 후 약 15년 동안 이 분야에서 공익 활동 변호사로 일했고, 난민법이 제정되는 값진 성과가 있었다. 그가 난민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데 특별한 계기는 없다. 황 변호사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당시 법대생의 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권 변호사, 다른 하나는 국제 변호사”라며 “나는 국제 인권 변호사가 됐으니 모든 법대생의 꿈을 이룬 셈”이라고 웃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활동하는 황 변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곁을 지키며 재난 피해자의 인권 분야에도 눈을 떴다. 현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하며 세월호 참사는 물론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피해자 지원과 원인 규명 등에 힘쓰고 있다. 모두 경제적 보상이 넉넉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꿈꿔 왔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황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충분히 보고 충분히 실망한 뒤에도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면 가라”고 조언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인권 감수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려움도 겪지만, 황 변호사는 예멘 난민 사태 가운데서도 ‘추방 위기에 처한 이란 친구를 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국민 청원을 올린 중학생을 보며 또 다른 희망을 본다. “난민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 중학생도 특별한 한국 국민이 아니에요. 곁에 있는 친구를 더 이해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보편적인 정서 아닐까요. 난민에 대한 불안감도 곁에서 경험하면 생각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yes@heraldcorp.com

▶황필규 변호사는 △충암고, 서울대 법학과 △사법연수원 34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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