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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편일률적 규제 ‘칼날’공모펀드 발목 잡는다
수수료 규제에 높은 수익률 포기
신규펀드땐 고유재산 의무 투자
50억 미만 ‘소규모 펀드’ 5%강제

운용사마다 상황 다른데 일률 규제
다양한 전략 세울 수 없어 불만


공모펀드는 불특정 다수의 금융소비자로부터 보다 큰 규모의 투자자금을 조달해 혁신기업과 신산업에 투자, 고객의 자산을 불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천편일률적인 규제로 인해 자산운용업계는 공모 펀드의 수익률을 높이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한다. 운용사 마다 서로 다른 운용환경을 무시한 규제로 인해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연초 이후 국내 공모 주식형 펀드는 -8.02%의 수익률을 기록해 -6.76%의 수익률을 기록한 사모 주식형 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채권형 공모 펀드의 최근 1년간 수익률 역시 1.29%에 불과해 은행 예금이자보다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공모펀드의 수익률에 비해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보니 금융당국은 수시로 운용보수 등 수수료를 내리라고 압박한다. 그러나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이같은 규제가 오히려 수익률을 끌어내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운용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수수료를 내리라는 당국의 압박에, 업계는 오히려 이런 방식의 당국 개입이 운용성과를 떨어트리게 한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

업계 관계자는 “운용 성과가 좋은 펀드매니저에게는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상품을 운용하도록 재량권을 줘야 하지만, 금융당국이 자꾸 운용 보수를 낮추라고 압박하다보니, 자산운용회사 경영진도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면 고객에게 환매를 권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차피 수익률이 저조한 상품과 똑같은 운용보수를 받을 바엔 환매 후 재가입을 유도해 선취 수수료를 더 많이 받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시장의 순기능을 믿기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을 선택, 펀드 수익률을 제고하려고 한다. 금융위원회는 2016년 행정지도를 통해 원칙적으로 모든 새로 출시하는 공모펀드에 운용사의 고유재산(seed capital)을 투자하도록 했다.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직접 자산을 투자하면 책임지고 수익률을 높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입 당시 최소투자금액을 2억~5억원으로 잡았지만 소규모 운용사들의 반발에 지난해부터는 2억원 이상으로 금액을 낮췄다.

자산운용업계는 펀드의 책임운용을 독려한다는 규제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펀드의 특성이나 운용사 규모에 따라 상황이 다른데도 의무 투자금액을 일률적으로 정한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의견을 들어 낮췄다고 하지만 소규모 운용사로선 상품 당 2억원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액수”라며 “선진국 중 미국 정도만 공모 펀드에 의무 투자 액수를 규정하고 있고, 그나마 규정 액수가 10만 달러로 우리 보다 더 적은 만큼 우리 당국도 전향적으로 규제를 풀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설정 이후 1년이 지나도록 설정 원본액이 50억원 미만인 ‘소규모 펀드’를 의무적으로 5% 이하로 줄이도록 한 모범규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목표 비율을 맞추지 못한 운용사는 신규 펀드 등록이 제한된다. 작은 규모의 펀드는 분산투자가 불가능하고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높아 운용사가 관심을 가지고 운용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업계는 금융당국이 일정한 숫자를 제시하며 의무적으로 달성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자산운용사에서 펀드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소규모 펀드는 운용사 입장에서도 줄이고 싶은 대상이지만 모든 고객이 환매하지 않는 한, 억지로 없앨 방법이 없다”며 “이미 소규모 펀드의 비중이 목표치에 근접한 만큼 일률적인 제한을 풀고 업계의 자율 규제에 맡기는 게 네거티브 규제 기조에도 맞다”고 꼬집었다. 소규모 펀드의 비중은 2015년 6월 36.3%에서 꾸준히 줄어 지난해 말 6.4%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목표 비율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모범 규준의 기한을 내년 2월까지 연장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5%라는 목표를 당국에서 일률적으로 제시한 것은 다른 나라에는 흔치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한국에서 소규모 펀드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라며 “운용사들이 소규모 펀드를 꾸준히 줄여왔지만 제한선을 없애면 다시 또 늘어날 것”이라며 업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투자처가 늘어날수록 펀드의 평균 규모는 어느 정도 작아질 수 밖에 없다”면서 “투자 전략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운용사에 재량권을 주고 운용이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펀드는 강제 청산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국과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에 부작용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업계의 논리 모두 일리가 있다”면서 “정부 정책에 따르기 위해 만들어지는 펀드들은 소규모 펀드 기준에서 제외하는 등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외에 업계에서는 다른 펀드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할 수 있는 비중을 50%까지 확대하거나 ETF의 파생위험평가액 한도를 200%까지 완화한 정책 역시 ETF를 운용할 수 있는 규모가 되지 않는 소규모 자산운용사에 불리한 정책으로 꼽고 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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