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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펀드 몸집은 커졌는데 투자기회 막는 ‘49인의 룰’
5년만에 설정액 두 배 성장 불구
투자 ‘권유’ 49인 이하로 제한
소액펀드만 양산…장기투자 어려워

투자자보호 위한 규제라지만
‘동일증권 쪼개기’ 등 부작용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모금한 실적 배당형 성격의 투자기금이 바로 ‘펀드’이다. 그런데 이 펀드가 금융당국의 얼토당토않은 규제에 꽁꽁묶여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모펀드는 투자자 수를 최대 49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고약한 것은 투자 ‘권유’를 49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권유를 받은 사람 전원이 투자에 응해야만 49명을 모집할 수 있는 셈. 만일 49명에게 투자를 권유했는데, 이중 투자에 응하지 않은 사람이 10명인 경우 이 펀드는 39명만으로 출발해야 한다. 시장에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제’라며 불만을 터트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규제로 인해 사모펀드가 소액 펀드만 양산하게 되고, 돈 벌이가 될만한 투자기회를 날려버리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적한다. 공모펀드 역시 과도한 규제로 인해 성장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용보수(수수료)를 내리라는 압력이 거센 탓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산을 운용하기 어렵다고 펀드매니저들은 하소연한다. 소규모 펀드 운용비율을 못 맞추면 새 펀드를 내놓지 못하도록 하고, 자산운용사에게 최소 투자 의무를 지우는 것 역시 지나친 규제라고 시장은 입을 모은다. 


사모펀드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고 투자자의 다양해진 욕구를 반영해 투자 대상도 주식이나 채권에서 부동산이나 해외 인프라 시설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과 경쟁하기 위한 효율적인 투자전략을 짜야할 자산운용업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호소한다.

국내 펀드 시장은 사모 펀드 위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2013년 7497개였던 사모펀드는 올해 상반기 9188개까지 늘어났다. 설정액 역시 2013년 144조 4516억원에서 5년 만인 올 상반기 현재 305조9866억원으로 두배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공모 펀드가 갯수 기준 3310개에서 4051개로, 설정액은 190조4443억원에서 239조7843억원으로 늘어나는데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모펀드는 사모펀드에 비해 운용 보수에 대한 제약이 크고 자금 조달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규제를 받게 된다. 또한 고객에게 투자설명서를 제공하거나 분기별 운영보고서 및 공시를 해야 하는 의무도 있기 때문에 고위험ㆍ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는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소수 투자가를 유치해 사모펀드 형태로 진행된다.

문제는 사모펀드로 인정받는 투자자의 수 기준과 전문 투자자의 범위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점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사모 펀드의 경우 49인 이하의 일반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투자자 수를 산정할 때 투자 권유를 받은 고객을 모두 포함하다보니 기준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게 자산운용업계의 불만이다. 사모 펀드를 취급하는 증권사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49인이라는 숫자도 턱없이 부족한 데다 공개적인 광고나 투자 권유도 허용되지 않다보니 각 지점의 PB들이 각자 몇명의 고객에게 이 상품에 투자할 것을 권유해야 할지 서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35인 이하의 일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면 사모펀드로 인정하지만 실제 청약자 수를 기준으로 투자자 수를 산정하기 때문에 국내 기준보다 기준이 낮다고 평가된다.

물론 기관 투자자나 일정한 기준을 갖춘 개인은 전문투자자로 따로 분류돼 사모 판단 기준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일정 자산ㆍ소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능력과 전문성에 관계 없이 일반 투자자로 분류돼 산정 기준에 포함된다. 기준이 까다롭다보니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전문투자자 수는 100여명 남짓한 불과한 실정이다. 반면 미국은 자산ㆍ소득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투자하려는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 역시 전문 투자자로 분류하고 있어 의사 등 의료 전문가들이 바이오 메디컬 스타트업에 사모 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일반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는 숫자도 제한되고 전문투자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허들도 높다보니 소규모 사모 펀드만 양산돼 인프라와 같은 특별자산 등 장기투자가 필요한 대상은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이같은 업계의 어려움을 반영해 유럽과 같이 공ㆍ사모 펀드 판단 기준을 유럽 수준인 100~150명으로 완화하고 투자자 판별 기준을 ‘권유’ 대신 ‘청약 기준’으로 변경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지속적으로 건의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업계의 요구는 잘 알고 있지만 투자자 보호 등 규제의 필요성도 있는 만큼 당장 기준 변경 여부에 대해 확답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금융투자의 대상과 기법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이를 사모 펀드로 담을 수 있는 범위에 대해 당국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업계가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2016년 베트남 랜드마크72 빌딩 관련 자산유동화증권(ABS)를 발행하면서 15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SPC 하나 당 49인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투자자금을 모았지만 이후 국회 등에서 “실질적인 공모펀드임에도 ‘동일증권 쪼개기’로 사모펀드로 인정받았다”는 비난이 일자, 금융당국으로부터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투자자의 숫자만으로 공모펀드와 사모펀드를 구분하기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둘 이상의 증권이 자금 조달 계획, 발행시기, 종류, 대가가 유사할 경우 하나의 증권으로 취급하기로 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동일 증권의 종류를 판단하는 기준이 여전히 모호해 여전히 금융당국이 지적하기 전까지는 법을 어겼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으로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투자상품의 경우 내용이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만큼 케이스마다 판단할 수 밖에 없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 역시 무자르듯 나뉘어지는 가이드라인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에 대해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처럼 투자 대상물 자체와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에 대한 분배권을 경제적으로 동일한 물건이냐, 아니냐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만큼 업계와 당국이 동일 증권에 대한 정의를 최대한 자세히 밝히려는 노력을 함께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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