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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미술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미술관 같은 호텔’이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실제보다 과장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며칠 전 사립미술관 관장들과 함께 화제의 파라다이스시티호텔을 방문한 필자는 선입견이 단숨에 깨지는 경험을 했다.

지레 짐작했던 호텔 인테리어 장식으로서의 미술작품이 아니었다. 먼저 총 작품의 수량에 놀랐다. 무려 2700여점의 현대미술작품이 호텔 입구와 로비, 객실, 카페 등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도 다채로웠다. 데미언 허스트, 구사마 야요이, 로버트 인디애나, 수보타 굽타, 알렉산드로 멘디니 등 국제미술시장의 블루칩 작가들을 비롯해 박서보, 김호득, 최정화, 뮌, 이세현 등 국내 유명 작가와 신진작가들의 작품이 다양하게 배치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호텔 곳곳에 설치된 미술작품의 위치와 정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아트 투어 맵’이다. 감상자에게 호텔 안팎에 숨어있는 미술작품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마치 현대미술 전시회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고품격 예술체험이라는 콘텐츠를 개발해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호텔의 마케팅홍보 전략에 필자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미술관을 넘보는 대형호텔과 과연 경쟁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위기의식도 느꼈다.

과거 백화점, 호텔, 테마파크 등 대형 복합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미술작품으로 고객을 끌어드린 사례를 접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 무늬만의 문화체험공간들은 경쟁상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락적인 볼거리에 그칠 뿐 미적 감동은 안겨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관장들에게 강렬한 미적 경험과 즐거움을 주는 대형아트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출현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술관 콘셉트를 지향하는 호텔 공간을 둘러보는 필자의 머릿속에서 쉴새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이제 경쟁 상대는 기존의 미술관들만이 아니라 새로운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신흥 아트엔터테인먼트 시설들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국내미술관 중 이들과 경쟁할 만한 곳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새삼 느껴졌다. 과연 관객의 흥미를 끌만한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된 건축물, 전시기획력, 스타소장품, 편의시설을 두루 갖춘 미술관이 과연 몇 군데나 될까?

호텔 아트 투어체험은 필자에게 미술관 경영전략을 새롭게 짜야할 시점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아울러 가장 효과적인 차별화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도 만들어주었다. 아트 투어가 끝나고 작품설명을 해준 파라다이스시티호텔 미술부장이 ‘관장님들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훈련을 쌓았던 경험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라는 덕담을 건넸다. 그 순간 답은 오직 미술관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과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미술품을 수집, 전시, 교육하기보다는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큐레이팅 능력을 강화하는 일이라는.. 미술관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새삼 일깨워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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