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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랑끝 보수, 길을 묻다 - 전원책 변호사 인터뷰]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대상은 기회주의 가짜보수”

지방선거, 한국적 보수의 몰락
보수철학에 충실한 리더 필요
자유·책임바탕 당 강령 재정비
빈부격차 줄이는 정책 찾아내야


한국의 보수가 길을 잃었다. 보수의 대변인을 자처해온 자유한국당은 6ㆍ13 지방선거에서 궤멸한 뒤 여전히 갈팡질팡 헤매고 있다. 선거 후에도 친박(親박근혜)과 비박(非박근혜)간 계파갈등에 패배 책임 공방만 오고 간다. 인적쇄신을 모두 말하지만 그 대상은 ‘내’가 아닌 ‘너희’일 뿐이다.

피아 구분없는 날카로운 독설로 정치권에서도 인정받는 논객 전원책 변호사를 지난 3일 만났다. 전 변호사에게는 살아있는 권력이나 죽은 권력이나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기준은 오직 ‘보수의 가치’다.

진보 정치인들도 전 변호사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논객으로 평가한다. 최근 한국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유력 거론되는 이유기도 하다. 인터뷰 시간은 오후 7시. 그의 하루 시작은 오후 6시부터다. ‘진실의 적들’, ‘잡초와 우상’, ‘권력의 몰락’ 등의 책을 쓰면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이 이어졌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전 10시경이다. 최근에는 정의와 관련된 책을 쓰고 한다. 두시간동안 수많은 고전들이 언급됐고, 경제와 관련된 통계수치가 제시됐다.

전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보수의 가치와 철학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이번 지방선거로 한국적 보수가 와해됐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인적쇄신도 중요하지만, 섣부른 ‘좌클릭’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전 변호사와 일문일답.

보수주의 가치에 무지한 결과

-‘보수야당의 몰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동의하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보수의 몰락이라는데 일리있는 말이다. 말하자면 ‘한국적 보수’가 와해됐다고 할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보수가 보수주의의 가치와 철학에 무지했거나 이를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의 승리, 혹은 ‘진보좌파’의 승리라는 데는 동의할 수는 없다. 정직한 진보주의자라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리도, 북한 주민의 인권에 눈감을 리도 없다. 포퓰리스트들의 승리라면 모르겠다.

-보수의 지방선거 참패원인은 여러가지가 언급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 한반도 평화무드, 혹은 홍준표 전 대표의 막말 등. 선거 패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이른바 전 정권의 책임을 공유해야 할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적’ 정치세력이 대중과 유리된 상태에서 치러졌다. 홍준표 전 대표는 그 간극을 줄이지 못했다. 야당은 야당답지 못했다. 거기에다 선거 전날 싱가포르에서 미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모든 방송, 신문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사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선거 넉 달 전부터 ‘북풍’(北風), ‘문풍’(文風)이 불었는데 그 절정이 바로 선거 하루 전 싱가포르회담이었다. 병무청에 군대 안 가도 되느냐는 문의전화가 쇄도했다고 하지 않나. 평화무드 속에서 ‘반공·반북’ 일변도의 한국당에 지지를 보내는 대중은 고령층이었다. 그나마 그분들도 박근혜 정부에 실망한 이들이 많았다.

한국은 이념이 대중화되지 않은 사회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처음으로 “나는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는 보수”라는 응답자를 앞질렀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들이 ‘좌클릭’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동의하는가.
▶틀린 말이다. ‘한국적 진보’라면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이념이 대중화되지 않은 사회다. 단적인 예로 몇 년 전 안철수씨가 ‘새정치’를 외치면서 등장하자, 그의 이념과 정책을 전혀 모르면서도 엄청난 지지를 모은 현상을 들 수 있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우상화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선진 민주정에도 이런 현상은 있지만 우리와는 분명 다르다. 우리는 이른바 ‘명망가 정치’ 현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프로파간다(propagandaㆍ선전 선동)가 모든 걸 좌우하게 되고, 데마고깅(Demagogingㆍ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일)이 활개치게 된다. 다시 말해 선전과 선동이 승부를 가르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됐다. 그래서 진보층이 보수층을 앞질렀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여전히 보수층이 진보를 앞서고 있다는 말인가.
▶진보적 성향이 강한 20~30대의 영향력이 세진 건 확실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청년층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탄핵과정에서 국정농단세력을 보수층 일부가 비호하면서 거리는 더 멀어졌다. 더 놀라운 건 그 때문에 잘못된 탄핵소추안과 이에 기반한 졸속 탄핵심판조차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것이다. 진짜 보수주의자라면 민주주주의 메카니즘을 파괴한 것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더라도, 엉터리 탄핵소추안은 물론 그 소추안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못한 헌재를 비판해야한다. 문제는 박근혜 비판에 가담하면서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보수층의 이반이다. 이분들이 이번에 마음을 바꿔 대거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곧 ‘문풍’의 승리이고 ‘북풍 퍼포먼스’의 승리다.

-한반도 평화무드 속에서 민심을 못 읽은 한국당의 대북공세 역시 패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당이 유연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남북화해 그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세밀한 대북정책과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다만 나는 남북, 미북 정상회담은 졸속회담이라고 본다. 트럼프 환상에 빠졌다고 할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외치다가 ‘완전한 비핵화’란 말로 어물쩍 넘어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걱정하는 대로 이번 회담이 김정은에게 면죄부만 주고, 우리는 여전히 ‘핵 인질’로 남게 된다면 그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대중에게 외면받더라도 누군가는 경고음을 내야만 한다. 야당이 그 역할에 충실하려면 난마처럼 얽힌 동북아 역학관계를 고민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적쇄신이 당 재건 방안으로 나온다.
▶인적쇄신이 필요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정농단에 책임 있는 친박 핵심뿐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청산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와 거리가 먼 범 집단주의자들, 그리고 ‘나도 보수다’라고 외치는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래서 먼저 가치와 철학을 분명히 하고 공유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의 핵심강령인 ‘사회적 경제’를 주장한다거나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 자신을 ‘합리적 보수’로 포장해선 안된다. 그건 대중을 기만하는 정치적 사기다. 과거 새누리당 비대위 때 당의 색깔을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받아들이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이제 그 혼란부터 청산해야한다. ‘자유와 책임’을 바탕으로 당의 강령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보수주의의 핵심인 도덕성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다음 시장자유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빈부격차 확대를 줄이는 정책을 찾아내야 한다. 느슨해지는 한미동맹에 대한 대안도 고민해야 한다.

불출마는 도주이자 비겁한 행동

-친박의원의 총선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인적쇄신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인적쇄신을 외치면서 비대위원장이 칼자루를 잡고 모두 불출마선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마디로 웃기는 말이다. 불출마가 자기희생이며 하기 좋은 말로 환골탈태하는 길이 될까. 그건 그냥 도주다. 비겁한 행동이다. 그것보다는 철학부터 공유해야 한다. 보수철학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은 진보진영으로 넘어가면 된다. 내가 보기엔 스무 명도 훨씬 더 된다. 그 중엔 비대위원장이나 당의 새 리더로 언급되는 소장파들도 있더라.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이 중앙당 해체라는 쇄신안을 내놓은 뒤 비상대책위 구성준비위를 꾸렸다. 조기전대를 해서 새 지도부를 꾸려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 대행의 원내정당 주장은 옳은 방향인데 지금은 아니다. 선진 민주정으로 가려면 원내정당화는 필수적이다. 당 대표가 공천권을 틀어쥐고, 당에 사무총장이 있어 조직을 관리하고, 대변인이 획일적인 성명을 내놓는 것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보수철학에 충실한 새 리더가 등장해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다. 그 다음 외연을 넓히는 재건작업을 해야 한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대중정당을 건설해야한다. 그러려면 보수철학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집권세력의 박근혜정부 적폐청산 공세가 끝나지 않는 한 야당은 그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재등장은 어색

-비대위원장의 권한을 놓고도 많은 얘기가 나온다.
▶당의 해체 수준까지 전권을 가질 수 있을까. 문제는 지금 비대위원장이 등장한다 해도 다음 총선 때까지 비대위 체제로 갈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전당대회를 열 때까지 불과 서너 달, 길어도 반년 정도다. 결국 총선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비대위원장이 카리스마가 있다 해도 소속의원들을 승복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면 비대위원장이 정쟁의 한가운데 있게 된다. 그렇다고 의원들 목을 마구 칠 수도 없다. 그건 여당 독주를 방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말 현안이 있다면 모를까. 비대위 체제로는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기 십상이다.

-비대위원장 후보로 김종인 전 의원, 김병준 국민대 교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어떤 인사를 추천하고 싶은가.
▶외부 비대위원장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솔직히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지금이 총선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에 비대위원장 후보가 거론되는데 특정인을 두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종인 전 의원이 재등장하는 건 좀 이상하다. 그 분은 과거 새누리당의 색깔을 바꾼 분이다. 보수라는 단어를 빼자고도 했다. 경제민주화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그 다음 민주당으로 갔다. 그 분이 다시 비대위원장을 맡는다? 코미디가 될 것이다. 본인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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