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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조범자 정치섹션 에디터]보수는 다시 설 수 있을까
주변의 오랜 보수 지지자들이 6·13 지방선거에서 보인 투표 행동양식은 대략 세가지였다. “안될 걸 알지만” 그래도 ‘2번’을 찍은 사람, “이번 선거는 글렀다”며 아예 투표장에도 가지 않은 사람, 그리고 (많지 않지만) “꼭 당선될 것”이라 믿으며 2번을 찍은 사람. 보수 유권자들도 이미 자유한국당의 패배를 예감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고 한다. 선거 역사에 남을 압도적 참패. 대다수 보수 지지자들이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결과다. 올 초 한국당의 한 다선 의원은 지방선거에 나가느냐 묻자 “인물난이라고 출마를 권유하지만, 이렇게 당 지지율이 바닥을 칠 땐 안나가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지는 건 당연했고, ‘얼마나, 어떻게’ 지느냐의 문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 한반도 평화 분위기 등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자꾸 밀어 올렸다. 반면 한국당은 냉전 해빙 흐름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색깔론’에 갇혀 막말을 쏟아냈다. 대통령 탄핵사태를 초래한 정당으로서 자성하지 않았고, 민생 경제 정책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말만 ‘보수 혁신’이었지, 마땅한 콘텐츠도 없었다. 오로지 ‘샤이보수’ 결집에만 기댔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했고, 그 결과 민심을 얻지 못했다.

선거 참패 후 보름. 한국당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선거 후 이틀만에 열린 첫 의총에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는 반성문을 쓰고 무릎을 꿇었다. 당명을 바꾸겠다고 했고 비대위원장으론 외부인사를 영입하겠다고 했다. 전혀 새롭지 않은 돌림노래. ‘무릎 쇼’가 또 시작됐다는 비아냥이 일었다. 그래도 회생을 위해 몸부림치는 표정은 읽혔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열린 두번째 의총에선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박성중 의원 메모사건, 살생부 논란 등이 계파 싸움에 불을 지폈다. 친박·비박·진박, 초·재선·중진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지겨운 파열음을 냈다. 지선 패배 그 순간부터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1957년 ‘미 정치학 리뷰’(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에 발표한 논문에서 보수주의를 ‘상황적’ 개념으로 정의했다. 즉 기존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 세력이 등장했을 때, 보수주의는 그에 대응하기 위해 나오는 상황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대한민국 보수도 수구·냉전·반공을 앞세운 ‘상황적 보수주의’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에겐 헌팅턴이 말하는 “혼란에 대한 합리적 방어” 명분이 없다.

결국 해법은 ‘사람’이다. 헤럴드경제가 한국당 초선 의원 17명을 대상으로 최우선 혁신 과제를 질문한 결과 ‘인적 쇄신’을 꼽는 의원이 9명으로 가장 많았다. 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이나 정책·이념 수정을 답한 응답자는 각각 3명과 1명에 불과했다.

젊은 보수를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이루고, 유권자들에게 합리적 보수 이념과 가치를 새롭게 제시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진보 입장에서도 힘있는 보수와의 발전적 경쟁이 필요하다. 6·13 선거 결과가 보수의 재건, 나아가 건강한 정치 생태계 조성에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 보수는 지금 매우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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