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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 독립운동 모르기도… 유공자 후손 대부분 열악한 삶”
김 교수가 부친의 사진을 들춰보고 있는 모습. 김성우 기자/zzz@heraldocorp.com]


김능진 前독립기념관장 인터뷰

1919년 3월, 서울에서 3ㆍ1운동이 있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농촌계몽운동가였던 김병우 안동교회 장로는 연희전문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던 아들 김재명 선생에게 3ㆍ1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전달받았다. 토마스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도쿄 유학생들의 ‘2ㆍ8 독립선언’에 영향을 받아,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 장로는 안동교회에 재직중이던 김영옥 목사, 이중희 장로 등과 안동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그리고 1919년 3월18일 열린 안동의 삼일운동을 주도하다가 투옥됐다.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그는 약 2년 간 징역을 살며 큰 고초를 겪었다.

제9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능진(69)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광복회 이사)는 안동시위에 중심에 섰던 김병우 장로의 손자, 정보원 역할을 한 김재명 선생의 아들이다. 그의 집안에는 국가유공자만 3명이다. 할아버지와 고모부 유후직 선생(대구형무소 3년 복역), 작은 아버지 김재성 선생(6개월 복역) 등이다.

그는 “집안 어른들은 (광복 후에도) 별다른 내색을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작은 아버지는 “6개월 밖에 복역하지 않았다”면서 쑥쓰러워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올해 국가보훈처의 보훈예산은 5조4863억원이다. 예산에 따라 수급대상자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독립운동가 자손으로 받아야 할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조상이 독립운동가임을 확인해 줄 사료가 부족한 탓이다. 김 교수의 집안도 이와 같은 사례다. 안동 3ㆍ1운동에 도움을 줬던 아버지 김재명 선생은 이후 만주로 망명을 떠났고, 사료가 없어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후손들이 선조가 독립운동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상당하다. 독립운동 자체가 은밀하게 이뤄졌고, 광복 이후에도 일부 친일인사들이 득세하면서 독립운동가 상당수는 움추려든 채로 여생을 보냈다. 이들 1세대 다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관련된 사료나 진술은 더욱 부족해졌다.

독립운동가 사이에서도 계파 싸움으로 갈등이 생겨 서로를 밀정으로 몰아세우거나 암살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럴 경우 독립운동가를 판별하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진다. 실제로 그는 독립기념관장과 광복회 이사로 재직하면서 많은 사례를 목격했다.

김 교수는 “독립운동가 A가 회고록을 내면서 다른 독립운동가 B를 ‘스파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면서 “이런 경우가 되면 B를 독립운동가로 봐야 할지를 놓고 큰 숙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가유공자 선정작업 대부분은 이 같은 1세대들의 회고록이나 후손들이 가보로 간직하고 있는 선친의 활동 일지, 사건일지가 기록된 신문 내역 등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그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료를 확보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 난징에 있는 문서보관소다. 과거 중국 국민당 정부가 머물렀던 이곳에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 교수는 문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문 정부 들어서 한중 양국간 관계가 급속도로 완화된 만큼, 이번 기회를 삼아 사료 확보 등에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삼일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후 99주년을 맞는 해이다. 내년에 다가올 100주년에 대비해 정부와 국가보훈처 등은 과거 규명을 위한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예산이 5조원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수급대상자도 늘고 있다.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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