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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공기반 맥주반…수입맥주의 역습
지난 주말은 시원한 맥주 한잔 없이는 견디기 힘든, 한여름을 방불케 한 날씨였다. 2주 전부터 시골에서 화려한 싱글 생활을 즐기는 아는 형님이 이사를 한다며 도움을 요청해와 지난 토요일 하루 반나절동안 이삿짐과의 전쟁을 치뤘다. 대충 마무리를 한 후 인근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오신 형님이 맥주 한 캔을 따며 한마디 한다. “수입맥주들은 점점 더 가격이 저렴해 지는 것 같은데, 왜 국산맥주는 가격 내릴 생각을 안하지? 사실 난 OO맥주가 더 좋은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주류 출입 반년차가 되면서 자연스레 출입처 등에서 들은 이야기를 형님에게 읊조리고 있었다.

“형님, 당연히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가격이 저렴하죠. 현재 국산맥주의 출고가격은 출고원가에 70%가 넘는 주세를 비롯해 교육세ㆍ부가가치세를 더해 산정합니다. 반면 수입맥주는 출고가격 신고의무가 없어 수입 신고가에 주세ㆍ교육세ㆍ부가세가 붙어 출고가가 정해지기 때문에 가격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거죠. 다시말해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할수록 세금이 줄어들게 되는거죠.”

편의점을 점령한 수입맥주들.

형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편의점에서 수입맥주를 싸게 팔 수 있는 것은 세금혜택 탓이네”라며 들고 있는 수제맥주를 바라본다.

이미 수입맥주가 과세기준으로 인해 국산 맥주보다 싸게 판매되면서 국내 맥주시장을 빠르게 점유하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수입맥주 6캔을 1만원 이하로 판매하는 파격 행사까지 진행하기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입맥주에 손이 갈 수 밖에 없다. 수입맥주 전성시대, 수입맥주의 역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맥주는 안방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긴 분위기다. 국산 맥주의 경쟁력이 떨어진것도 씁쓸하지만, 너무 빨리 안방을 내준 듯 싶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물론 안방시장을 재탈환하기 위해 국내 주류업체들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국내 수제 맥주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업계에 따르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0억원대로 추정된다. 전체 맥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지만 빠르게 성장 중이다. 정부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수제맥주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여기 또한 한계가 있다. 불합리한 세금 체계 때문에 가격 경쟁력부터 수제맥주는 밀리고 있는 것이다.

수제맥주 업체들은 수입맥주에 대한 세금 부과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규모 맥주 면허 업체에 대한 과세표준을 줄이고 맥주 전문점에서만 판매하던 수제 맥주의 유통을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수입맥주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수제맥주의 모 대표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맥주는 식품이고 숙성을 오래 해야 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완제품이 만들어지면 빨리 소비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수입맥주들은 결코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며 “하지만 소비자들은 아쉽게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맥주 가격이 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신선하게 마셔야 하는 맥주의 본질을 잊고 음용하고 있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한 소비자로서 맥주시장이 서둘러 패러다임을 바꾸기를 기대한다. 수제 맥주들이 그나마 국산 맥주의 점유율을 높이는데도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맥주 업체들이 뛰어 넘어야 할 장벽은 수입맥주 업체들이 아니라 ‘맛없는 국산 맥주’라는 소비자들의 편견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맥주 뿐만이 아니다. 식품 등 외산의 부상 속에서 국산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가격도 품질도 떨어지는 국산을 이용하라는 말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불성설이다. 이미 소비자들은 무엇이 현명한 소비인지 잘 알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국산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하기 전에 기업들 스스로가 제품의 품질과 가격을 만족시켜 줘야 한다. 국산 맥주가 살 길이 여기에 있다. 

cho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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