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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구본무 회장과 평판
알프레드 노벨이 잘 나갈 때였다. 앉아있기만해도 돈이 보따리째 들어오니, 세상 부러울게 없었다. 어느날 노벨의 형인 루드빅 노벨이 사망했다. 그런데 한 신문이 사망자를 노벨로 착각했다. 노벨 부고기사가 실렸다. 부고기사에서 노벨은 ‘죽음의 상인(merchant of death)’으로 표현됐다. 다이너마이트를 포함한 350개의 특허, 폭탄과 살상무기를 만드는 90개 이상의 비즈니스를 보유한 그를 빗댄 말이었다. 노벨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물음과 함께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그가 노벨상을 만든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한 신문사의 잘못된 부고기사가 없었다면 노벨상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게 참 재미있다.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가 13살 때였다. 어느날 선생님은 칠판에 이렇게 썼다. “내가 죽은후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How will I be remembered after I die)”. 선생님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너희들이 나이 50이 넘은 후 이 문제는 너희들 심장을 후벼팔거야”라고 했다. 드러커와 동창들이 60년후 다시 만났을때 누군가가 말했다. 선생님의 그 말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드러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13살 때 선생님이 적어준 메시지를 기억했고, 훗날 남들에게 어떻게 평가될지에 끊임없이 고민해왔고, 그렇기에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평판.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 것은 평판의 다른 이름이다. 노벨과 드러커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한 것도 다름아닌 이 평판이었다. 두사람 다 훗날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평가받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삶을 살았다.

지난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삶이 화제다. 대한민국 재벌회장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소탈하고 겸손한 생전의 삶이 회자되면서 ‘구본무 신드롬’이란 말까지 생겼다. ‘좋은 평판’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기자가 구 회장 얼굴을 본 것은 대여섯번 정도일 것이다. 개인적 인연은 없다. 공식행사 등에서 취재를 위해 몇마디 질문한 게 전부다. 그러니 구 회장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아, 그러고보니 기억나는 일이 하나는 있다. 풀(Pool)기자로 한참 취재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더니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커피 좀 마시면서 하시지”. 바로 구 회장이었다. “대기업 회장 답지않게 살갑구나”. 그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렇듯 생전의 구 회장은 전형적인 재벌회장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만과 권위는 없고, 사람을 존중했으며, 특권의식은 커녕 특혜를 바라지도 않았다는 세간의 평가는 그래서 맞는 말일 것이다.

‘구본무 신드롬’은 갑질, 아니 초갑질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좋은 교훈이 된다. 특히 사람 위에서 군림하며, 온갖 특권의식에 사로잡힌채 평판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일부 ‘가진 사람들’에겐 일대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될 것이다.

노벨은 돈으로 평판을 샀고, 드러커는 일생동안 평판을 관리했다. 구 회장은 태생부터 사람 냄새가 났으니 어쩌면 평판에 관한한 노벨이나 드러커보다 한수 위 인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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