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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세훈 2심 앞두고 청와대에 ’우리도 불안하다’ 전한 대법원
-靑 “항소기각 기대한다” 의견에 법원행정처 “재판부 의중 파악 노력”답변
-항소기각 시 “불만 있겠지만 판사 징계 효과로 나서는 이 없을 것” 전망
-통상임금 사건, 과거사 국가배상 사건도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로 열거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교감하며 원세훈 사건 등 주요 재판 동향을 파악하고 교감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파일 내역을 포함한 3차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2015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청와대는 ‘항소기각을 기대한다’는 의견을 법원행정처에 전했다. 당시 1심에서는 국정원법 위반만을 인정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박근혜 정부 정통성에 흠이 가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는 입장임’이라고 답했다. 
특별조사단 단장을 맡은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원행정처는 곧바로 재판부 동향을 파악하고, 결론에 따른 내부 단속 방안 마련에 나섰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원세훈 1심 판결에 청와대가 비공식적으로 사법부에 감사 의사를 전달했다는’ 후문이 담겼다. 항소심도 1심과 같은 결론이 나올 경우 ‘불만 세력’의 의견이 심화될 수는 있으나, 김동진 부장판사 징계로 인한 ‘교육효과’에 따라 실제로 나서는 이가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1심 판결을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라고 공개 비판했다가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반대로 항소심이 1심 결론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사법부 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이 올라오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24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가 되는 글에 즉시 ‘임시조치’를 취해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기재했다. 보고서는 특히 ‘법관 정기 인사는 최대한 조속한 시점에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기 인사 발령을 내면, 판사들이 임지를 옮기는 데 정신이 팔려 원 전 원장 사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분산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바람과는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법정구속했다. 청와대는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을 통해 사법부에 큰 불만을 표시했고, 대법원 상고심에 올라간 사건을 ‘조속히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는 의견도 전했다. 실제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일부 증거 자료를 문제삼아 ‘다시 심리하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대법원이 청와대의 의중을 따라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조사단은 ‘전원합의체 회부가 BH(청와대)의 주문에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법원조직법 65조에서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 과정은 조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결론냈다. 이 사건은 2015년 2월 12일 상고심 접수됐고, 같은해 7월 16일 선고됐다. 조사단은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일반적인 사건에 비해 상당히 신속하게 선고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적었다. 다만 ‘주심인 민일영 전 대법관의 임기 만료일이 2015년 9월16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이밖에 ▷통상임금 사건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KTX여승무원 사건 등 사회적으로 관심이 쏠렸던 일들도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했던 사례’로 꼽은 임 전 차장 명의의 보고서를 확인했다. 조사단은 그러나 임 전 차장 등 당시 관여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필요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임 전 처장은 지난해 논란이 불거지자 법관 연임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사실상 사임했다. 현직 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징계는 불가능하고, 책임을 묻는다면 형사 처벌하는 방법 외엔 없다.

조사단은 또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동향을 파악한 내역을 공개하면서도 ‘실제 인사상 불이익을 준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고영한(63) 대법관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를 받았고,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사 연구모임 행사를 축소하도록 압박한 이규진(56) 부장판사도 감봉 4개월의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조사단 결론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사 과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한 판사는 “상식적으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 관심사안에 적극 협력한다는 의사를 수회 표시했고, 상고법원 통과를 위해 거래하려 했으며 심지어 청와대 관심 사안인 재판들이 대부분 청와대가 흡족해 할만한 내용으로 선고됐다”며 “조사상 한계가 있음에도 재판에 아무 영향이 없었다고 단정지어 발표한다면 수긍할 국민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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