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헌법의 이름으로양 건 지음사계절
佛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헌법역사부터
민주헌법까지 해석·균형적 시각 제공
원리적인 규정많아 광범위하고 추상적

한국은 촛불정국 후 개헌 목소리 커져
남북해빙무드에 ‘영토조항’ 마찰 소지
‘87헌법’ 성격·내용, 현실과 비교 분석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한 해빙 분위기는 현행 헌법과 마찰을 빚을 소지가 크다. 바로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과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통일조항 사이의 모순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서는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국가와 국가간 결합인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모순이 있다.

법학자 양 건은 남북한 관계는 화해 협력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동시에 적대적 대립관계가 혼재된 이중적 관계라는 특수성을 띤다며, 이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평화적 흡수통일(독일식 통일)뿐’이라고 말한다. 

“종잇장 위에 쓰인 헌법조문들은 잠든 모습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대 상황에 따라 그 의미는 약화되거나 강화되고 변천을 겪는다. 헌법은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지속적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이미를 지니면서 새롭게 형성되고 재형성되어간다.…헌법의 의미는 지금도 생성·변화 중이다. 헌법은 현재진행형이다“.‘(헌법의 이름으로’에서)

‘헌법의 이름으로’(사계절)는 법학자 양 건의 50년 헌법 연구의 결정판이다. 2015년 ‘법철학·법사회학 산책’이라는 부제를 붙인 ‘법 앞에 불평등한가? 왜?’를 펴내고, “법에 관한 더 이상의 관심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했던 그가 다시 법으로 돌아왔다. 시작은 일반인을 위한 차분한 헌법 해설서를 쓰자는 것이었지만 촛불정국을 지나면서, 그 경험들이 녹아들었다.

헌법학자가 보는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헌법이론으로 말하면, ‘명목적·장식적 헌법에서 규범적·민주적 헌법’으로 대전환을 이룬 시기이다. 그동안 헌법은 유령 같은 존재에서 일상 속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바뀌었다.

가령, 영화 검열이 사라지고 공무원시험에서 제대 군인을 우대하는 여성차별이 금지됐으며, 간통죄가 폐지되고 동성동본 금혼제, 호주제도 폐지됐다. 대통령 탄핵도 이뤄졌다. 이 모든 것이 ‘헌법의 이름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헌법 개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자는 “근래 ‘87헌법’이 수명을 다했다고 외치는 소리가 넘치지만 정작 87년 헌법의 현실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런 뜻에서 책은 무엇보다 ‘87헌법’의 성격과 내용을 꼼꼼하게 살폈다.

저자는 현행 87년 헌법의 기본 원리로 국민주권주의, 권력분립주의 , 개인의 기본권 보장, 방어적 민주주의, 평화통일주의, 국제평화주의, 수정자본주의적 경제질서, 법치주의를 든다. 세계 각국의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이지만 한국적 현실도 담겨있다. 예를 들어 방어적 민주주의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하기 위한 사상이다. 어느 개인 또는 단체의 행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할 경우 그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위헌 여부를 다툴 때나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판결에 적용된 예가 있다. 저자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데에는 공익과 사익 사이의 저울질에 대한 면밀한 비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헌법은 원리 차원의 규정이 많아 추상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광범위하다는 특징이 있다. 결국 헌법해석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맡는 게 헌법재판이다. 저자는 여기서 해석의 기준이 되는 게 바로 ‘국민의 의사’라며, 이 때 국민의사란 부침을 반복하는 여론이 아니라 ‘헌법 속에 내재한 국민의사’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현행 헌법과 함께 ‘헌법이란 무엇인가’란 성격 규명에 공을 들였다. 이를 위해 헌법의 눈으로 근대 세계사를 추적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헌법은 시민혁명과 함께 해왔다. 헌법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근대 시민혁명에서 혁명 세력의 첫 번째 정치적 목표는 바로 헌법 제정이었다. 국민적 합의로부터 새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로 헌법을 삼았다.

혁명의 진원지가 어디냐에 따라 헌법 제정의 기조가 달라졌고 국가와 주변의 운명이 갈렸다.

프랑스는 1789년 이후 약 100년간 기나긴 혁명의 여정, 즉 제정에서 왕정, 입헌군주제, 집정부제, 국민공화제, 민주공화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체제를 거쳐 자유주의적 입헌주의 헌법을 정착시켰다. 반면 시민혁명 없이 외부로부터 입헌주의 헌법을 이식받은 독일과 일본은 집단주의를 극단적으로 몰고가 나치즘과 군국주의로 치달았다. 헌법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조정이라는 성격을 갖는데, 시민혁명의 경험이 부재한 까닭에 극단적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헌법 이해의 기초로 역사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헌법은 개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규정하는 동시에 국가에 대한 개인의 책임도 명령하는, 국가와 개인 상호간의 계약이라는 것이다.

즉 시민 개인의 자주적 자유주의 의식이 허약한 곳, 아래로부터의 시민혁명이 부재한 곳에서는 계약에 대한 책임의식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바로 헌법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이념적으로 심하게 갈라져 있다. 헌법은 어느 법 분야보다도 가치개념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헌법을 보는 시각 또한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며,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자세를 지키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