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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두현의 클래식에 미치다]지휘자는 그냥 쇼맨십 아닌가요?
헤럴드경제는 클래식 저변 확대를 위해 4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클래식 페이스북 페이지인 ‘클래식에 미치다’ 운영자 안두현 지휘자의 칼럼을 10회 연재합니다. 격주로 지면에서 소개될 칼럼에서는 쉽고 재미있는 클래식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클래식 역사, 작곡가, 연주자, 공연장, 관람 에티켓까지 알아두면 쓸 데 많은 정보들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한 청소년 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음악이 정점을 향해 달려갈 무렵, 갑자기 지휘자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유유히 무대를 떠나버렸다. 갑작스런 상황에도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잘 흘러가는 것 처럼 보였지만 이내 몇몇 연주자들이 타이밍을 놓치고 음을 연주했고 곧 도미노처럼 모든 악기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음악은 들을 수 없는 소음으로 전락했고, 연주는 멈춰버렸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일화다. 관객들에게 지휘자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시도였다.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가 꼭 필요한가요?” “그냥 쇼맨십 아닌가요?”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럴때마다 나름의 예를 들어 설명하지만 ‘지휘자는 이렇다’라고 한 개의 키워드로 딱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다. 지휘자 개개인마다 스타일이 달라 역할과 범위가 크게 달라서다.

다만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한다. ‘민주화’가 화두인 21세기에도 가장 독재적이고 비민주적인 집단이 바로 오케스트라다. 지휘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물론 가치나 행정까지도 달라진다.

음악적인 부분만 놓고 보자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통일’이다.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단원들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건 무척이나 어렵고 기적같은 일이다. 

요즘은 독단 대신 단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휘자가 빛을 발한다.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똥고집’으로 가득 찬 지휘자의 모습은 구시대적이다. 진짜 지휘자는 관객에게 감동과 감탄을 주는 연주를 들려주는 지휘자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음악시간에 학생들이 ‘고향의 봄’을 부르고 있다. 선생님이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나의 살던’은 강하게, ‘고향은’은 부드럽게 부르라고 시킨다. 학생들 중 일부는 이 부분 전체를 부드럽게 부르고 싶지만, 그렇게 불렀다간 점수만 깎인다. 또 선생님은 ‘나의 살던’을 디미뉴엔도(점점 작게)로 부르라고 시키지만, 어떤 학생들은 크레센도(점점 크게)로 부르고 싶다. 문제는 여기에서 한명이라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부르지 않는다면, 통일된 음악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좋은 음악은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의 기준과 개성만이 남은 음악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엔 독단적 리더십보다 부드러운 리더십이 힘을 발휘한다. 자신의 음악만 주장하기보다 단원들이 지휘자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게 하는, 다시 말해 단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휘자가 빛을 발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똥고집’으로 가득 찬 지휘자의 모습은 구시대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지휘자로서 갖춰야할 기본이 있다면 그건 실력이다. 지휘자의 팔 동작은 오케스트라를 좌지우지하는 마법사의 지팡이에 가깝다. 단원들이 악보만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지휘봉 끝의 움직임, 지휘자의 손동작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두 시간 가까운 연주를 흔들림없이 지휘자의 생각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뛰어난 음악성과 지휘 테크닉은 기본이다. 마지막으로, 진짜 지휘자는 관객에게 감동과 감탄을 주는 연주를 들려주는 지휘자다. 

글=안두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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