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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살만한 세상] 마포대교 투신 온몸으로 막은 20대 “119 올 때까지 농담하며 시간 끌어”
-긴장한 듯 보이면 돌발상황 생길까 태연한 척
-“누군가의 새 인생 시작 함께 할 수 있어 감사”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몇 살이세요? 저는 스물 아홉이에요.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는데요.”

취업준비생 조상현(29) 씨가 지난 23일 마포대교에서 투신하려는 A(34) 씨에게 나이 얘기를 꺼냈다. 조 씨가 A씨를 말리기 위해 수없이 내뱉은 질문 중 하다. 조 씨는 이날 오후 11시께 자전거를 타고 마포대교를 지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A씨를 목격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조 씨는 너무나도 놀랐지만 긴장하는 마음을 숨기고 A씨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여기 어떻게 온 거예요?”, “어우~ 밑에 쳐다보니 무서워죽겠는데 우리 눈 보고 말해요.” 조 씨는 119에 신고한 후 A씨를 붙잡고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A씨는 조 씨의 말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떨어지면 죽을까”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A씨를 움직인 건 “몇 살이냐”는 상현 씨 질문이었다. 상현 씨가 “나이가 비슷해 보이니 말을 편하게 할까”라고 묻자, A씨는 “아니다. 내 나이가 더 많다”고 답했다. 말은 놓지 말자는 의미였다. 

마포대교서 자살 시도한 30대 남성 구한 조상현 씨.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25일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위에서 만난 조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내가 놀라 허둥지둥 대면 상대도 동요할까봐 침착한 척 애쓴 것일 뿐 속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너무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119 구조대가 오기까지 약 10분간 상현 씨는 생전 처음 본 A씨의 ‘아우’가 되었다. A씨가 “떨어지면 죽을까” 물을 때 상현 씨는 능청스럽게 “안 떨어져서 봐서 모르겠는데, 많이 아프지 않을까요?” 되물었다.

서로 나이를 확인한 후 A씨가 형이라는 것을 안 뒤로는 더욱 친근하게 대했다. 조 씨는 “형님 근데 제가 너무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데 일단 나와서 얘기하시죠” 겁먹은 말투로 매달렸다.

조 씨는 이러한 재치가 ‘상대방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그저 내 눈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마포대교서 투신하려는 변모(34) 씨를 119구조대와 함께 구출하고 있는 조상현 씨의 모습. [마포소방서 제공]

A씨는 119 구조보트가 한강에 보이자 다시 대교 아래로 떨어지려고 몸부림을 쳤다. 상현 씨는 그 다음부터는 아예 온몸으로 그를 막아섰다. 그를 껴안고 붙잡고 구조대원이 올 때까지 버텼다. 

A씨가 구급차에 올라타는 것을 본 뒤에야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조상현 씨는 A씨가 구급차에 실려 갈 때까지 곁을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A씨가 난간 밖에서 구조됐을 때에도 그는 난간 위에 놓인 A씨의 지갑과 휴대전화을 챙겨 119구조대원에게 전달했다.

소중한 생명을 구한 소감을 묻자 “감사하다”고 그는 답했다. “이번 일은 분명 그의 인생이 달라지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지는 길목에 있어 영광스럽다. 또 그분 덕분에 나도 할 줄 몰랐던 일을 하게 돼 감사드린다”고 미소 지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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