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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말은 요새 청와대가 심심치 않게 하는 말이다. 낙하산 인사 의혹에도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고, 북한이 남북고위급 회담을 무산시키면서 우리를 다시 비방하는 것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이 없단다.

그래서 이 말 뜻이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의 낮춤말 표현은 “할 말이 없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할 말이 없다”라고 말 할 때는,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때, 그리고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싶을 때, 진짜 몰라서 할 말이 없을 때, 아니면 진짜 알리고 싶지 않은 경우나 너무나 죄송해서 말문이 막히는 경우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말투나 태도를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의 경우, 그러니까 너무나 죄송해서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높은 지지율을 보란 듯이 뽐내는 것이 요새 청와대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의 경우, 그것도 아니면 세 번째 혹은 네 번째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모두 문제다. 우선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상대의 말이 너무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다는 것과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싶어서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한 것이라면, 이는 기자들, 더 나아가서 국민을 무시하거나 우습게 보는 것이 된다.

언론인들은 국민을 대신해서 ‘알 권리’를 찾아주는 존재라고 할 때, 이들의 질문에 대해 기가 막힌다든지, 아니면 무시하고 싶은 질문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국민에 대해 무례한 행위다.

만일 이런 의도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한다면 정부 여당이 그렇게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의 명령” 혹은 “촛불 혁명 정신”은 단지 립 서비스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머릿속의 국민이란, 자신들을 항상 칭찬만 해주고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존재만을 의미하지, 자신들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자신들의 행위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국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세 번째의 경우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몰라서 할 말이 없는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능력 부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권은 국민들과 관련돼 있는 사안이나 국가에 관한 모든 사안을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여기서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네 번째의 경우 역시 문제다. 알리고 싶지 않아서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반응해도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외교적 문제에 있어서는 분명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부분은 존재할 수 있다.

이것까지 국민들에게 모두 알리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이유가, 외교 상대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상대의 기분을 잡치지 않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겠다면 이는 문제다. 외교라는 것이 상대가 있는 사안이지만,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할 정도로 눈치를 본다는 것도 정상적 외교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치(內治)에 관한 사안은 더욱 그렇다. 인사 문제나 다른 국정 관련 사안에 대해서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것을 알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들이 생각해도 문제가 있는 사안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조치 혹은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더구나 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그렇게 국정의 투명성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대통령의 일정도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약속까지 했던 정권이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들이 ‘알 필요’가 없는 사안들이 많이 생긴 모양이다. 그렇게 투명성을 외치던 정권의 입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청와대가 자꾸 이런 말을 하면 우리 국민들도 정부나 권력 핵심부에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올 수도 있다는 점을 권력층은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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