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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정쟁의 미덕과 해악
정치는 기본적으로 갈등적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면 정쟁(政爭) 역시 피할 수 없다. 정치의 운명 같은 것이다.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대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문제는 싸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한 쪽에서 싸움을 걸면 대응방식이 많지 않다.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피하는 것이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으면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꺼리도 아닌데 왜 싸움을 거냐고 볼멘소리를 낼 수 있지만, 싸움 거는 쪽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야당(野黨)이 야당(opposition party)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은 야당으로서는 그냥 넘어가기 힘든 정쟁의 호재(好材)다. 사이버 여론전쟁에서 늘 패배해 왔다고 생각하는 야당이다. 여당발 댓글조작 사건을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겠거니 경찰의 수사나 지켜보자고 앉아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이 연루된 사건이다. 초기 경찰과 검찰의 수사도 미진했다. 권력 봐주기란 오해를 살만큼 부실했다. 특검 실시를 주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대통령의 간곡한 호소를 외면하는 것은 지난 10년간 국정을 책임져온 공당(公黨)의 풍모는 아니다.

설령 자유한국당이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국민 대다수가 남북정상회담을 찬성하고 있고, 성공을 염원하고 있다. 여러가지 우려가 있겠지만, 국민적 지혜와 노력을 결집시켜야 할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홍준표 대표와 단독회동한 것도 초당적 협력을 위한 것이지 않는가. 정치적 거래의 룰을 깬 것이다.

더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응방식이다. 이런 시기에 정쟁을 벌이는 야당이 밉기는 하겠지만, 빠른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여당의 몫이다. 무엇보다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 여당의 첫 번째 대응은 민주당 현역의원 배후설에 대한 부인이었다. 그리고 ‘카더라 통신’이 정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다 김경수 의원 실명이 거론되자, 수사기밀 유출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보도만 보더라도 댓글조작 사건은 카더라 통신의 유언비어가 아니었다. 배후까지는 아니지만 김 의원이 연루되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김 의원의 기자회견도 상당 부분 진실과 거리가 있었다. 드루킹을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가볍게 말했지만 그런 사람의 부탁으로 청와대 추천이 이루어지고 청와대 비서관이 관련 인물을 만나는 일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수백 건의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건 사실과 다른 악의적 보도”라 반발했지만, 그들에게 기사 URL을 보내면서 ‘협조’를 부탁한 것은 사실이다. 여당도 김 의원도 솔직하지 못했다. 야당에게 불신과 의혹의 빌미를 준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가 정쟁의 해악이 두드러진 상황이 아닌가 한다. 이제 정쟁의 미덕을 살려야 할 시점이다. 여당은 특검을 수용하고, 이를 계기로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면 여야가 함께 사는 길이다.

추경도 처리하고 개헌일정도 다시 잡아야 한다. 여러 민생법안도 처리해서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자. 이번 일을 계기로 여론조작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네이버과 같은 포털 사이트의 독과점을 해체해야 한다. 여론시장의 독점이야말로 민주주의에 가장 치명적인 위험이다.

정쟁이 정치적 미덕일 수 있는 것은 타협의 지혜를 발휘할 때이다. 정치는 결코 선악(善惡)의 문제일 수 없다. 누가 옳고 그런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렌트(H. Arendt)가 잘 말했듯이 정치가 ‘더불어 살아가는 일(living together)’이라면, 양보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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