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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4년…곳곳 안전불감증]여객선 타보니…대참사 ‘세월’ 잊었나
제주행 안내방송 잡음 심하고
구명조끼 선 꼬여있는 보관함
소화전함 일부는 문도 안열려


지난 13일 오후 7시, 부산에서 출발하는 제주행 여객선. 선장은 매정했다. “구명조끼 사용법은 안내방송을 참조해주시고…. 비상 안전물품을 임의조작하는 행위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채 1분도 되지 않은 3~4마디의 안내방송의 전부였다. 잠시 후 선내 방송에서 더빙음이 흘러나온다. 잘 들리지 않아 스피커가 위치한 객실 중앙 천장쪽으로 귀를 갖다 대고 나서야 ‘구명조끼’에 관한 내용임을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옆자리 승객도 “어린애가 먼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만화를 보는 줄 알았다”면서 “잘 들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4년이 지났지만 여객선 안전은 심각했다. 16일 중해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발생한 해양사고는 총 2582건으로 전년도보다 11.9% 증가했다. 또 지난 2017년 국정감사에서 선박안전기술공단은 유ㆍ도선의 ‘안전관리 강화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여객선은 안전요원이 주기적으로 갑판 및 선실에 대한 순찰을 진행해야 하지만, 갑판에서 안전관리 요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성우 기자/zzz@

이같은 오랜 지적에도 지난 한주간 헤럴드경제가 직접 탑승한 국내 여객선과 유람선들의 안전실태는 기준에 못미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선사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해야할 것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승객들은 선내에서 도덕적 헤이를 드러냈다. 승객들의 방종이 만연했지만, 이들을 통제할 비상요원은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4주기의 의미가 무색해진 모습이다. ▶관련기사 3·10·12면

백미는 지난 13~14일 탑승한 한 부산발 제주행 여객선이었다. 안내방송 외에도 수많은 문제들이 눈에 띄었다. 기자가 열어본 3등실 구명조끼 벽장 보관함들은 대부분 정돈 상태가 부실했다. 비치된 구명조끼는 선이 엉망으로 꼬여서 조끼를 하나씩 떼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화전함과 구명조끼함 일부는 성인 남성인 기자가 힘을 주어 당겨도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버튼이 없고 헤드부분을 돌려서 켜야하는 비상손전등은 안내방송이 들리지 않으니 사용법을 알 수 없었다. 객실중에는 안전용품이 배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선내 승객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했다. 화물칸에 선재된 자동차에 승객이 드나들 수 없지만, 승객들은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차에 중요한 물건이 있다”고 떼를 썼다. 배가 도착하기 30분전, 선장이 ‘안전한 선내에서 대기해달라’고 안내방송을 했지만, 상당수 승객이 여객선 입구에서 퇴선을 기다렸다. 객실과 로비에서 벌어진 술판들, 술판이 끝나고 너부러진 술병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안전요원은 이를 통제하지 않았다. 객실과 갑판에서 안전요원 자체를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해양수산부의 ‘표준운항관리규정집’ 제9장에 “구명, 소화설비의 비치상태 및 성능을 수시로 확인하여 즉시 사용 가능하도록 유지ㆍ관리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21조는 ‘선원의 순찰 의무’나 ‘안내방송 이행 여부’를 강제하고 있다. 각 여객선이 출항 전 작성해야 하는 ‘안전점검보고서’에서도 ‘선내방송시설’과 ‘소화ㆍ구명설비’를 사전에 점검하도록 돼 있다. 이같은 점검사항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육안으로 쉽게 확인이 가능한 문제들은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이 여객선은 구명조끼 824개를 비치해두고 있다. 의무 배치수량 784개보다 40개의 여유분이 있었다. 각 지점에 설치된 소화기도 114개에 달한다. 정수기ㆍ자판기 등 기내 비품들은 단단히 고정돼 있고, 선내 곳곳에 붙은 비상구와 구명용품들의 설명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객선 선사 측은 “신분증 검사를 강화하고, 비상연락처를 받는 등 규정을 크게 강화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술을 마시는 것은 개개인의 문제일 뿐,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서 “만취한 사람은 출항시 탑승을 거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세월호 이전보다 안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여객선들도 안전장비 구비나 승객보호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보여주기보다는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때 피해를 막거나, 최소화하려는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추는게 절실해 보인다.

제주=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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