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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 사람- 황정근 변호사] ‘대통령 탄핵’…헌정공백 최소화의 주역
헌정위기 신속하게 극복에 일조
석달동안 설 하루빼고 고된 격무

문체부 1급 공무원 사직 강요
파면사유에서 제외돼 아쉬워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지난해 2월 2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열리던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이 술렁였다.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 측 대리인인 조원룡 변호사가 ‘편파진행’을 주장하며 주심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내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선고를 늦춰야 하는 박 전 대통령 측은 이 신청으로 검토시간 3일을 벌고, 변론이 종결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 때 소추위원단 측에서는 수석대리인 황정근(57·사법연수원 15기) 변호사가 나서 3일의 여유를 주지 말고 바로 각하해줄 것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황 변호사 주장을 받아들였고, 박 전 대통령 측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헌재가 이러한 상황을 미리 대비한 측면도 있었지만, ‘재판 지연 의도가 있을 때는 기피 신청을 바로 각하할 수 있다’는 민사소송법 45조를 꺼내든 황 변호사의 노련함도 돋보인 장면이었다.


△서울민사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현) △저서 ‘인신구속과 인권’, ‘선거부정 방지법’, ‘정의의 수레바퀴는 잠들지 않는다’, ‘새ㆍ달ㆍ밝ㆍ깨’

박 전 대통령 파면결정이 내려진 지 1년여 만인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소백 사무실에서 황 변호사를 만났다. 탄핵심판은 상대방의 재판 지연을 시도를 차단하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강일원 재판관 기피신청 때도 대통령 측 대리인은 기피 사유를 발표문 읽듯 읽어내렸다. 시간끌기 외에 ‘재판관 망신주기’ 의도가 보였다. “기피신청은 서면으로 제출하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재판관 면전에서 신청사유를 낭독하는 겁니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제지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어요. 결국 상대 반발이 심해서 제대로 발언하진 못했습니다.”

그는 일련의 과정을 ‘시간과의 싸움’으로 정리했다. “92일만에 끝난 건 다행이었습니다. 헌정위기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게 핵심이었어요. 탄핵심판이 시작되면 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지 않습니까. 이 상태가 장기화하지 않도록 빨리 끝내야 했죠.” 그는 “재판 지연을 막는 게 가장 힘들었다”면서도 국회 의결만으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는 현행 제도는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행 방식은 헌정 공백 위험이 너무 큽니다. 심지어 탄핵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 소장이 물러났는데도 후임자 임명을 못했죠.”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심리 착수 석달여 만에 헌재가 내린 이 결론에 이견을 밝힌 재판관은 없었다. 1년이 지났지만, 박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황 변호사는 ‘고된 과정이었다’는 짧은 소감만 남겼다. “지금 돌아보면 힘들었습니다. 사건 기록이 방대하고 쟁점도 복잡한데, 결과는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었죠. 석 달 동안 설날 하루 빼고 쉼없이 일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어요.” 황 변호사는 그동안 수임한 다른 사건 때문에 법원도 오가야 했는데, 다행히 사정을 아는 재판장들이 기일 변경 신청을 잘 받아줘 탄핵심판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황 변호사는 조직력 면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보다 나았다고 자평했다. 로펌 김앤장에서 굵직한 사건을 여럿 처리한 경험이 있는 황 변호사는 9개 법률사무소 16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대리인단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았다. 팀별로 작성된 서면은 황 변호사가 일일이 검토한 다음에야 헌재에 제출됐다. 상대방이 들고 나올 수 있는 재판 지연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일도 황 변호사가 전담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 측에는 헌법재판관 출신의 이동흡 변호사나 대법관을 지낸 정기승 변호사 등 거물급 대리인이 있었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손발이 맞지 않았다. 말미에는 대통령 대리인끼리 고성을 주고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측은 검찰이 작성한 조서를 곧바로 증거로 쓸 수 없으니 일일이 조사 받은 이들을 증인으로 불러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재판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헌재는 결국 ‘변호사 입회 하에 작성된’ 조서만 증거로 인정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황 변호사는 아쉬움을 표시한다.“이렇게 되면 검찰 조사 받을 때 변호인을 데리고 가지 못했던 사람은 증언을 위해 법정에 나와야 해요. 돈이 없으면 변호사를 대동 못하죠. 형편에 따라 법정 출석 여부가 달라지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데, 선례로 남아 아쉽습니다. 탄핵심판은 대통령이 아닌 경우에도 열릴 수 있잖아요.”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검찰이 당사자라서 조사 내용을 바로 증거로 쓰는 게 부적절하지만, 탄핵심판에서 검찰은 ‘제3의 기관’이기 때문에 증거로 써도 문제가 없다는 게 황 변호사의 생각이다. 박 전 대통령이 문체부 1급 공무원 사직을 강요한 점도 충분히 입증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파면사유에서 제외된 점도 의외였다고 평가했다. 실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여기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원래 황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손꼽히는 선거법 전문가다. 90년대 후반 우리나라 유일의 선거전담 재판부에서 1년 동안 선거 관련 사건만 판결했다. 이 때 적어둔 메모를 묶어 ‘선거부정 방지법’ 저서를 내기도 했다. 정치신인의 신규진입을 가로막는 사전선거운동 금지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등 소신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선거 사건을 다수 맡다 보니 정치적 성향에 대한 오해를 받는 부작용도 겪는다. “탄핵심판 끝나고 왜 그런 사건을 했느냐는 분도 있었어요. 태극기 집회하시는 분들의 불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진태 의원도, 진보 성향의 조희연 교육감 변호도 맡았어요. 변호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보고 일을 할 뿐입니다. 다만 역사적인 사건에 이름을 올린 자체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사진=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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