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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개헌 논의, 국민이 빠졌다
청와대에 의한 개헌 발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9일 발의 계획 발표에 이어, 어제(20일)부터 개헌안의 세부내용에 대한 발표가 시작되었다.

발표를 맡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헌법이 국민의 뜻에 맞게 하루빨리 개정돼 국민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정치적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는 대통령의 당부도 덧붙였다.

청와대가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이유는 명료하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 역시 그렇게 약속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청와대의 입장을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원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현실적 가능성이다. 국회에서 통과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116석의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 역시 청와대발 개헌발의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야당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실현불가능한 일을 왜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야당이 제기하는 지방선거용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문재인 정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헌법 개정은 그렇게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강력한 야당 압박을 통해 최소 수준의 개헌이나 개헌절차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려는 의도인지 모른다.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서는 그나마 국민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야당의 동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청와대발 개헌발의에는 반대하더라도 국회가 개헌 일정을 확정해준다면 청와대로서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 된다. 그러나 현재 야당의 태도로 볼 때 이러한 압박전략이 먹혀들 것 같지 않다.

야당의 반대도 나무랄 일만이 아니다. 헌법 개정의 전제조건은 말 그대로 ‘충분한 공론화와 국민적 합의’다. 이러한 조건이 결여되어있다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국민의 뜻에 맞게” 개정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사실 지방분권이나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의제도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 사이에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도 있다.

대통령 4년 연임제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타당성과 숨겨진 해악에 대한 엄밀한 진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권력구조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공론화와 숙의를 통한 국민적 합의다. 이를 통해 헌법의 권위도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개헌논의의 주체로 국회를 상정하는 잘못이다. 여야(與野) 할 것 없이 개헌 논의를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 결여된 국회 발의 또한 정당성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국민적 합의만이 특정 정당의 몽니를 차단할 수 있다.

결국 공론화 과정이 배제된 국회의 합의는 정당 간 정략적 담합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하게 말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개헌발의가 아니다. 그것이 설령 전략적 지혜라 해도 마찬가지다.

개헌의 주체로서 국민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은 개헌은 정당성을 발휘할 수 없다. 국민을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국민이 빠진 채 추진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헌법은 누가 만들어서 국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개헌의 주체와 합당한 절차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행 헌법의 가장 큰 문제도 개정 과정에서의 ‘졸속과 정략적 담합’이었다. 지금 개헌논의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민적 공론화를 배제한 채 졸속과 정략적 담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급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헌법 개정은 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 상식과 원칙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달라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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