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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직하고 잔잔하게…북한의 옛 속살을 보다
‘매그넘’ 사진작가 구보타 히로지 회고전
40년전 첫 방북…김일성 생일공연도 관람
백두산·금강산·노동당 찬양공연까지 담아
중국·일본·미얀마 등 ‘아시아 풍경’ 도 전시

노래 하는 북한아이들의 표정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멀리서 오신 손님을 위해 작은 공연을 준비한 모양이다. 사진 속의 아이의 순수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이념을 이야기하는 건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북한 사회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는 유로포토ㆍ매그넘한국에이전트와 함께 ‘구보타 히로지-아시아를 사랑한 매그넘 작가’전을 지난 10일부터 개최한다. 세계적 사진가 그룹인 ‘매그넘’의 대표 사진작가인 구보타 히로지(79)의 50년 작품활동을 총망라하는 전시다. 작가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기록자로 혹은 관찰자로 사진을 촬영했고, 각 시대 문화권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을 남겼다. 


작가가 처음 북한을 방문한건 1978년이다. 이후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그곳의 다양한 생활상을 기록했다. “시간을 들여 그들의 규칙을 지켰고, 그들의 믿음을 얻었”기에 북한의 내밀한 풍경까지도 촬영할 수 있었다. 1982년엔 김일성 주석의 75번째 생일 축하공연도 관람했다. 구보타 히로지는 수십명의 여성무용수와 군인들이 북한 노동당 상징을 찬양하는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극의 절정이었고, 아주 아름답고 즐거운 장면이었는데도 나에겐 슬프게 느껴졌다”는 작가는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정치도 모른다. 다만 너무 제도적으로 짜여진 예술이라 그런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백두산과 금강산의 풍경도 장관이다. 백두산은 천지를 시원하게 내보여줬고 금강산은 얕은 구름아래 숨었다. 찬찬히 살펴보면 천지의 모래와 얕은 구릉의 이끼까지 선명하다. 금강의 골짜기엔 작은 폭포와 나무들까지 고스란하다.

가까이서 볼때 오히려 더 이미지가 선명해지는 건 인쇄기법 때문이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다이-트랜스퍼’기법을 활용했다. 독일 함부르크의 장인을 13번 넘게 찾아가며 자연스러운 색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작가는 “최근엔 대부분 잉크젯 프린터를 활용하는데, 색상이 나에겐 너무 화려하다. ‘다이-트랜스퍼’ 기법으로 색이 묵직하고, 안정됐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전시엔 북한의 풍경외에도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티베트 등 다양한 아시아의 모습이 담긴작품이 나왔다. 뿐만아니라 1960년대 70년대 흑인민권운동 행진 현장, 반체제 자연찬미파 히피족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구보타 히로지의 사진은 1978년 미얀마의 황금바위를 기점으로 컬러로 바뀐다. 이전까지 화려한 색이 진솔한 기록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흑백사진만을 고집했으나 황금바위를 보고 그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자연은 흑백이 아니라 총천연색이기 때문. 작가는 “색채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듯 했다”고 회상했다.

구보타 히로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는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유명 사진가 하마야 히로시(1915~1999)의 취재 활동을 보조하다가 사진에 매료됐다. 이후 정치학도의 꿈을 버리고 1961년 도미,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활이 어려워 바나나만 한달 내내 먹으며 버티기도 했고, 음식배달을 하며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1965년 매그넘 사진작가가 된 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 사진작가협회의 ‘넨도 쇼 상’(1982), 마이니치 신문의 ‘마이니치 예술상’(1983) 등을 받았으며 매그넘 부회장도 역임했다.

전시는 4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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