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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미투 파장]물꼬 터진 남성 미투…“학창시절 제 별명은 ‘남창’이었습니다”
-20대男 “고등때 친구들에 성적학대” 고백
-유사성행위 등 강요…“장난이란 말에 또 상처”
-권력은 어디에나 존재…미투 저변 넓혀야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7년전 그 학교에서 저는 ‘남창’이라 불렸습니다.”

남성 피해자도 어렵게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를 선언했다. 고교시절 학내 성폭력 피해를 입은 K(24) 씨가 지난 8일 본인의 피해 경험을 고백하며 남성 성폭력 피해자로서 미투를 지지했다. “남자끼리 장난 좀 칠 수도 있지”란 인식으로 이뤄지는 남성간 성폭력을 지적하는 미투 선언이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가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 및 정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넌 왜 이렇게 말랐냐”…성폭력 장소된 교실=지난 2011년 대구 모 사립 남자고등학교 1학년 학급에서 K 씨는 근 1년간 동급생 다수로부터 성적학대를 당했다. 처음엔 “넌 왜 이렇게 키가 작니”, “어디 아픈건 아니니”로 시작된 가벼운 괴롭힘이 나중엔 폭력으로 이어졌다.

가해 학생들은 수업 시간 중에 강제로 유사성행위를 해주게끔 강제하는가 하면, K씨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거나 겨드랑이를 입으로 핥는 등의 입에 담기 힘든 성폭력도 서슴없이 행했다. 물리적 폭력도 따라왔다. 뺨을 때리거나 가벼운 K씨를 번쩍들어 공중에서 휘두르고 사람이 아닌 ‘운동 기구’라 칭하기도 했다. 가해자는 같은 반 학생들이었다. 폭력 가담자 10여명과 방관자 20여명의 암묵적 합의 하에 학대는 근 1년간 계속됐다.

K씨는 “당시 150㎝를 조금 넘는 왜소한 체구에 힘도 약해 또래 남학생 사이의 ‘먹잇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K씨의 피해를 보다 못한 누군가가 학교에 신고했지만 당시 K씨의 담임교사는 “너희들 요즘 누구 괴롭힌다는 소문이 있다. 걸리면 죽는다”는 훈화 한 마디로 사건을 무마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남성 피해자로서 겪는 고통은 계속됐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단체는 대부분 여성단체라 피해남성이 하소연할 곳은 없었다. K씨는 “전문 심리치료사조차 성폭력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성폭력 피해자 단체를 가도 남성 상담사는 만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7년전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K씨는 2년전 뒤늦게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힘겹다. 그는 “그림 그리기는 걸 좋아했지만 여성스러운 취미라는 말에 트라우마가 생겨 그만두게 됐다”며 “억지로 살을 찌우고 헬스로 몸집을 키우기도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손이 떨리는 후유증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권력과 위계는 어디에나 존재…미투로 일상 권력 깨뜨려야”=K씨는 이번 미투 선언으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공소시효가 아직 남았지만 가해자 처벌 의사도 없다.

그는 “남성간 성폭력을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하는 인식 탓에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인식했다”며 사회적 인식의 후진성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K씨가 힘주어 말하는 부분은 ‘일상의 권력’이다. 그는 “어떤 공간에서든 위계 관계나 수직적 권력관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투 운동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뿐 아니라 일상의 권력 관계조차도 깨트릴 수 있는 운동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같은 반 동급생 사이에서도 물리력에 의한 위력이 발생했듯, 직장 이외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역시 미투 대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성대결 양상으로 전개된 미투에 대해서는 “남성들의 참여가 미투 운동에서 배제돼선 안된다”며 “여성 중에도 남성보다 힘센 사람이 있고, 남성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은 있다. 미투 운동은 이분법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는 말로 남성 피해자의 미투 참여를 독려했다.

그는 온라인에 미투 선언을 한 이후 다른 남성 피해자들의 응원 메시지를 받고 있다. 초등학교 때 남자 선생님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등을 고백한 사례, 대학에서 당한 성폭력 등 여성 피해자만큼 사례가 다양했다. 17일에는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도 본인을 학내 성폭력 피해를 당한 남성 피해자라고 소개한 미투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남성 미투의 물꼬가 점차 벌어지는 추세다.

K씨가 미투 고백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는 가해자 처벌이나 신상공개가 아닌 ‘미투 운동 특별법’ 제정이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실적시명예훼손 폐지와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근간으로 한 청원글을 올리며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해당게시판에는 인권ㆍ성 평등 카테고리도 있지만, 그가 설정한 카테고리는 ‘미래’였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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