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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사현장이 무대’ 국내 1호 농튜버 오창언
이름도 생소한 ‘버라이어티 파머’
방송 1년만에 구독자 1만 7000명 청년셀렙 화려한 변신


손에 흙을 묻힌 것은 초등학교 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너른 고추밭은 그의 놀이터이자 학교였다. 그의 꿈이 힘차게 자라는 기름진 땅이었다.

“어릴 때부터 전 농부라고 생각했어요.”

중장비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강원도에서 풋고추 농사를 크게 지었다. 집에는 늘 일이 많았다. 10만주가 넘는 나무에는 매일 5톤 트럭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고추가 자랐다. 고사리 손으로 고추박스를 접고, 잡초를 뽑으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당을 줬다. “고추박스 하나에 10원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일을 배웠어요.”

먹방(먹는 방송)ㆍ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넘쳐나는 시대, 난데없는 1차산업 콘텐츠가 유튜브를 강타했다. ‘청년 농부’ 오창언 씨가 만든 1인 방송 ‘버라이어티 파머’(Variety Farmer)다. 국내 최초 ‘농방’(농사하는 방송)의 창시자로, 이젠 ‘농튜버’(농사+유튜버)로 불린다. 찬바람이 여전히 매섭던 날, 강원도 인제에서 오창언 씨를 만났다. 

농사일에 한창인 오창언 씨.
[제공=오창언]

국내 최초 ‘농방’의 창시자

어린 시절 아버지는 ‘대농’이었다. 옥수수밭 7만 평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고추밭. “중장비 사업으로 번 돈으로 농사를 시작하셨어요. 그 때는 농사로 돈을 잘 벌 때였어요.”

수확량도 상당했다. 풍년이 들었고, 하루에 인부 40~50명씩 고용해야 할 만큼 일손이 부족했다. “농사는 잘 됐는데 가격은 폭락하더라고요.” 고춧값은 10㎏당 1만 원으로 떨어졌다. 옥수수 농사는 태풍이 몰고 온 수해로 물에 잠겼다. “몇 년 동안 수억씩 손해를 봤어요.”

오창언 씨가 ‘농방’을 시작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힘든 걸 알고 있었어요. 저희 집도 많이 힘들었고요.” 많은 농민들이 악순환을 반복한다. 빚을 내서 농사를 짓고 농사를 지어 빚을 갚는다. “정성껏 농사를 지었는데 가격이 안 좋으면 다음해에 또 빚이 생겨요.”

농사를 짓는 동안의 ‘기다림’도 무용지물이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수확한 작물은 홀대받기 일쑤다. “농민들은 온 마음을 다해 농사를 지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고 자라 저도 자부심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우리 농업이 대우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답게 오 씨는 방송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막연히 농업에 문화를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한 형의 “미디어 쪽으로 나가보라”는 조언에 힘을 얻었을 뿐.

“유튜브를 하겠다고 컴퓨터를 바꿨어요. 편집과 제작 기술은 유튜브로 배웠고요. 하다 막히면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작업했어요. 계속 하다 보니 장비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하하) 카메라를 세 번이나 바꿨어요.”

지금은 영화 촬영에도 쓰이는 고급 기종으로 각종 콘텐츠를 만든다. “영상 편집을 잘 한다”, “오디오가 깔끔하다”는 전문적이 칭찬도 댓글로 달린다.

오창언 씨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버라이어티 파머’는 현재 1만7000명의 구독자를 모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제공=오창언]

씨감자 고르기 등 이색 콘텐츠 인기

직접 농사를 짓는 밭에서 만든 ‘1호 농튜버’의 콘텐츠는 재기발랄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또래들에겐 낯설고 신선한 그림이 등장한다. 씨감자 고르기, 초당 옥수수 이삭 솎아주기, 씨앗 파종하기 등 이색 콘텐츠가 많다. 요즘엔 ‘출장’도 다닌다. 채널의 인기에 힘 입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농업을 알리는 것이 좋아보인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전국의 착한 농가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어요. 사실 제가 하려고 했던 콘텐츠이기도 했어요.” 이 프로젝트로 오 씨는 비슷한 연령대의 청년 농부를 만나며 콘텐츠에 다양성을 더하게 됐다.

새로운 ‘농방’ 콘텐츠는 방송 1년 만에 일을 냈다. 구독자는 벌써 1만 7000명을 넘었다. 이쯤하면 농업계의 ‘청년 셀럽(celebrity의 줄임말)’이라 할 만하다. “아우, 제가요? 말도 안돼요.” 스물넷 청년 농부에게서 쑥스러운 기색이 가득 찼다. 열심히 손사래를 친다. “농사판에서 인지도가 아주 조금 있는 정도예요.(웃음)”

구독자가 늘수록 콘텐츠 생산의 어려움도 절감하고 있다. 어느새 제작자의 고충도 실감 중이다. 농한기가 찾아오다 보니 ‘재밌는’ 농업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사실 농업은 소비층이 적기도 하고요. 게다가 제가 웃기는 걸 잘 못 해요.” 그래서인지 농사에 대한 지식보다는 야생에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특히나 인기가 높다고 한다. ‘농한기’ 용으로 최근 공개한 ‘멧돼지’ 콘텐츠는 무려 37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방송 1년 만에 나온 최고 조회수다.

“어려움이 많아요. 전 아직까지 카메라가 어색해서 말도 제스처도 자연스럽지 않아요. 혼자 하다 보니 정적인 장면만 나오고요. 농사 관련 콘텐츠는 그림이 심심하잖아요. 제가 봐도 재미가 없는데 사람들이 보면 과연 재미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요즘엔 콘텐츠가 너무 고민이에요.”

‘청년 농부’의 꿈은 더 멀리 있다.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새로운 목표다. 농산물 하나 하나에도 스토리를 입혀 브랜드로 만들 계획이다.

“농산물의 가치가 너무 낮아요. 많은 사람들이 5000원 짜리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익숙하면서도 호박 한 개에 1000원, 오이 한 개에 1000원이라고 하면 비싸다고 생각해요. (농부들은) 비싸게 팔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값을 받고 싶은 거예요. 많은 상품엔 광고가 있는데 농산물엔 왜 없을까요. 농산물에도 스토리를 만들어 가치를 입히고 싶어요. 그게 농업을 알릴 수 있는 일 같아요.”

인제=고승희 기자/s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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