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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소방관 정치학
“경상도는 소방직 국가직 전환,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저기 호남 같이 열악한 지역이 그런 게 필요하죠.”

현재 영남에서 소방관으로 재직중인 지인의 한 마디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시대역행적인,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언사를 하게 한 것일까. 실제 현상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치의 어두운 면이 지방 소방관의 의식을 사로잡은 것일까.

4년 전인 지난 2014년 전국 소방관 4만명 중 3만7000여명이 소방직 국가직 전환 동의서에 서명했다. 당시 소방방재청 측은 “교육, 연가, 병가중인 소방공무원 3000명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소방관들이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을 바라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국민들은 온갖 궂은 일에 주저 없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목숨을 걸고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그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두 손 모아 열망한다. 그런 국민의 뜨거운 염원이 2018년 현재 소방직 국가직 전환 추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현 소방청 측은 “소방직 국가직 전환은 전국의 소방관 근무 여건을 상향 평준화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소방직 국가직 전환이 되면 소방관의 처우나 근무환경이 개선되는 만큼 소방관 스스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상도의 한 소방관은 지금도 여전히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이라는 명제에 코웃음치고 있다. 물론, 그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와 비슷한 직업 환경에서 그와 비슷한 지연과 혈연으로 지역 사회에 밀착된 일군의 집단이 그와 비슷한 의식을 공유할 것이다. 그런데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경상도는 오히려 다른 지역에 비해 근무 여건이 열악한 편에 속한다. 호남보다 열악한 경우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영남의 소방관 부족인력(2016년 12월 기준)은 3660명에 달하지만, 호남은 2820명에 불과하다. 영남에서 소방관 인력 부족이 더 심각하다는 얘기다. 또 구급차 탑승인원은 경북이 대당 2.3명, 경남이 2명, 전북은 2.4명, 전남은 2명으로 영호남이 별 차이가 없다.

아울러 소방청 자체 여론조사에서 ‘소방직 국가직 전환 반대’ 의견은 전국 어느 지역이든 10% 이하로 나타났다. 영남 지역도 ‘반대’는 한자릿수에 그쳤다. 알아볼수록 선량한 한 지역 소방관이 혹시나 지역감정의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닐까 우려가 커진다.

지역감정이라는 고질적인 정치 바이러스는 선거가 다급해지면 창궐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사 댓글에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런 댓글을 확산시키는 거라면 정치적 금도를 넘어서는 일이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과거다.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은 부산지검장, 부산경찰청장, 부산시장, 부산교육감, 부산상공회의소장, 안기부 부산지부장과 이 식당에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고, 대선 승리의 주역이 됐다. 제2의 초원복국집 사건을 꿈꾸는 이여, 김기춘은 역사의 승자인가, 패자인가.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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