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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투’법조이어 문화예술계 강타…‘권력의 성’허물어야
‘미투(Me Too) 운동’이 국내 법조계에 이어 문화예술계로 확산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권력층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각에선 폭로 자체보다 폭로 이후의 대처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투 운동은 애초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촉발됐다. 할리우드의 거물인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사건이 폭로된 이후 영화배우 얼리사 밀라노가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봤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SNS에 #MeToo라고 써 달라”며 미투 운동을 제안했다. 미투 운동을 제안한 지 하루 만에 5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리트윗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됐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문화예술계로 번진 미투=우리나라는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을 계기로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지현 검사에 이어 임은정 검사도 과거 부장검사에 의해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법조계 전체로 퍼졌다. 이후 법무부와 검찰이 전반적인 진상 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한 여자 후배 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김모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장검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안태근 전 국장은 서지현 검사에게 부당하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이달 말 검찰 조사에 공개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과 직위를 앞세워 조직내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성추행, 성폭력 행위들이 속속 고발대에 오르고 있다. 피해를 당하고도 숨 죽여 지내야했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증언을 하면서 ‘미투운동’이 사회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검찰내 성추행을 폭로했던 서지현 검사, 문단의 추악한 관행을 지적한 최영미 시인의 발언으로 이어진 미투운동은, 연극계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동안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던 이윤택 연출가를 사과 기자회견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윤택 연출가의 기자회견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한 여성이 ‘사죄는 당사자에게 자수는 경찰에게’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듯이, 그들의 상처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연합뉴스]

이후 미투 운동은 현직 국회의원, 도의회 의원 등의 동참으로 정치계는 물론, 문화계와 대학가까지 흔들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저명한 원로 시인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고발한 데 이어 연극인 이윤택도 성추행과 성폭행 의혹에 휩싸였다. 이윤택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사과를 했지만 성폭행 의혹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까지 예고한 상태다. 또 다른 연극계 거물인 오태석 연출가도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문화계의 미투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벌이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배우 겸 대학교수인 조민기도 청주대에서 수년간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학가도 미투 바람이 확산할 조짐이다. 조민기 측은 “성추행 관련 내용은 명백한 루머”라고 밝혔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라 나오고, 학교측도 이 사건의 공론화를 막으려 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권력 문제가 핵심…“성찰의 기회로”=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는 미투 운동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약자였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한 관심을 확대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미투 운동의 본질은 권력관계 내에서의 성폭력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의 핵심은 남녀 문제가 아닌 상하 권력 문제”라며 “성별이나 나이 등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영역에서는 어디에서나 성폭력이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피해자들의 폭로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과 시민들간의 연대 움직임으로 커지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은 SNS에 해쉬태그에 ‘위드유(WIth You)’라는 키워드에 달아 지지의 뜻을 밝히는 ‘위드유 운동’으로 퍼졌다. 이윤택 논란 이후 일부 문화계 관객들은 공연계 성폭력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자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미투 운동이 그저 일시적인 폭로에 그친다면 잘못된 행태를 고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력관계에서 벌어지던 성폭력 문제를 쉬쉬하던 관행을 없애기 위해선 추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권력층과 기성 제도가 미투 운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고 근본적으로 바꿔주느냐”라며 “다른 관점의 문제로 미투 운동을 호도하거나 이를 은폐하려고 하기보단, 성찰의 기회로 삼아 건강한 사회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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