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재건축 잡으면 될 줄 알았더니’…강남 떠나지 않는 투자자
금리 상승으로 조달비용이 올라가고,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세금 부담이 강화되면 부동산 투자 매력은 줄어든다. 책에 적힌 경제학 논리는 그렇다.

반면 중개업소 사장님들이 전하는 밑바닥 경제는 다르다.

“강남 집 사고나서 후회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지만 팔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람은 수두룩하다”

최근 강남구에서 만난 한 중개업소 대표는 ‘강남 불패’를 자신했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여윳돈이 넉넉한 강남 부자들에게 대출금리 상승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여차하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된다. ‘갭투자’다. 강남3구의 전세가율(감정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약 50%다. 전통적인 투자상품(채권ㆍ주식)은 물론 여러 대체투자(AI) 상품을 망라해도 강남 아파트처럼 레버리지를 절반이나 쓰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상품은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갭투자는 전세입자로부터 무이자로 돈을 빌리는 셈이므로 레버리지 효과는 극대화된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VIP컨설팅팀 수석부동산컨설턴트는 “대출규제는 실수요자 위주로 피부에 와닿겠지만 강남 투자자들은 대부분 자금 여유가 있다”며 “정부 정책이 아무리 강력해도 지금처럼 강남 집을 보유하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강남 부동산 사랑은 충분히 설명된다. 잘 모르는 주식, 채권 투자과 달리 부동산은 사서 묻어두면 되기 때문에 편하다는 것이다. 수익률은 몇몇 종목 주가가 더 높을지 몰라도 하루하루 차트를 보며 조마조마해하고 매도 시점을 고민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생각하면 강남 부동산만한 게 없다는 논리다.

실제 취재하면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프라이빗 뱅커(PB) 조언대로 주식도 해보고 펀드도 해봤지만 결국 나이 먹고 남아 있는 건 잠실 재건축 아파트뿐”이라고 했다.

강남에 대한 비논리적인 의사결정이 결과적으로 최상의 투자효과를 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강남 부동산 투자를 잘 하려면 경제학 교실이 아닌 반포 미용실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저위험ㆍ고수익이라는, 어찌보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오랜시간 존재하고 있고, 계속 이런 식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 중심에 재건축 단지가 있다. 30~40년 전 지어진 용적률이 낮고 대지면적이 높은 단지가 35~50층으로 탈바꿈되면 그만큼 앉아서 돈을 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재건축 규제는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급격히 완화됐다. 조합원 전매제한 폐지, 소형평수 의무비율 폐지, 용적률 상향 등 완화되고 폐지된 모든 규제는 곧 돈이 됐다. 도시계획심의에 상정만 돼도 가격이 오른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통제하겠다고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비논리적 집단행동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강남 부동산 시장에 대출규제, 조세 강화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대응수단만 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정부가 눈앞에 보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된 시장 참여자들을 너무 얕잡아 본 듯 하다. 재건축을 틀어 막으니 새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 1~2개 동으로 이뤄진 소규모 단지는 그간 비교적 주목을 못 받았지만 최근엔 인근 대단지와 가격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인근 분당이나 과천도 들끓는다. 돈이 강남 혹은 범 강남권 부동산 시장 안에서 머무르려는 것이다. 때문에 강남 부동산을 잡으려면 재건축 사업성을 낮추는 직접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산정 방식과 결과를 놓고 말이 많지만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을 돈으로 만든 여러 규제 가운데 원래대로 돌아온 한가지 규제에 불과하다.

강남 개발을 통해 자산 가치를 높여온 고소득층은 축척된 막대한 잉여자본을 무기로 강남 가치를 더 높이고 있다. 이렇게 높아진 진입장벽 안에서 그들은 여유롭게 저위험ㆍ고수익을 즐기고 있다. 그렇지 못한 계층은 넋놓고 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대를 거듭해 자산 양극화는 고착화될 수 있다. 강남 집부자를 그저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며 모른체할 수 없는 이유다.

kw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