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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체 붕괴의 ‘절망’…소리·몸짓의 ‘희망’
안젤리카 메시티 국내 첫 개인전
3채널 비디오설치작 ‘릴레이 리그’

옥상서 드럼·심벌즈로 호소하는 男
몸의 언어로 춤추는 역동적 무용수
난민 문제 등 ‘소통’ 으로 해결 기대


한 남자가 건물 옥상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드럼과 심벌즈로 이루어진 이 음악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모스 부호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이다. 격정적이면서도 호소력이 강하다.

옆 스크린엔 무용수 남녀가 나란히 앉았다. 비트가 넘치는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여자가 남자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한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손을 남자의 손에 포개고, 그의 팔을 들추고,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무언갈 전달한다. 남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화면엔 한 남성 무용수가 춤을 추고 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다 급하게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길 반복한다. 육체는 바닥과 공중을 오가며 몸의 언어로 시를 쓰고 있다. 카메라가 움직이며 이를 바라보는 사람이 보인다. 바로 앞서 만났던 무용수 남녀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 춤을 촉지각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3개 화면이 순식간에 연결되면서, 교감을 시도한다. 호주작가 안젤리카 메시티(42)의 3채널 비디오 설치작 ‘릴레이 리그’다. 

최후의 모스 전신을 음악, 춤으로 표현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담았다. 릴레이 리그 (Relay League), 2017, 3채널 비디오 설치, 8분, Courtesy the artist, Anna Schwartz Gallery, Melbourne and Galerie Allen, Paris. [제공=아트선재센터]

안젤리카 메시티의 국내 첫 개인전 ‘릴레이 리그(Relay League)’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그는 공동체, 소멸하는 문화적 전통, 영성에 대한 관심을 소리와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 소통방식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미술언어로 풀어내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이제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모스 부호에서 시작한다. 130여년간 군은 물론 민간에서까지 통신에 활용됐던 모스부호는 1997년 1월 31일을 중단됐다. 프랑스 해군은 “수신자 전원에게 알림. 이것은 영원한 침묵에 앞선 우리의 마지막 함성”이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송출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메시티는 “바다에서 모스 부호로 구조 시그널을 보내듯, 위기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작업이)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그는 2015년 파리 테러를 목도하며 난민, 이주자 문제, 공동체 붕괴등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거대담론을 다루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개인적인 동시에 무척이나 섬세하다. 4채널 영상으로 이루어진 ‘시민밴드’(2012)도 그렇다.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한 네 명 음악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고향의 전통 음악기법으로 새롭게 연주를 펼치는 비디오 앙상블이다. 메시티는 청각언어의 흔적을 따라가며 사라져가는 문화를 다시 환기시킨다. 4명 음악가가의 고향인 카메룬, 알제리, 몽골, 수단의 음악을 전혀 모르더라도 이들이 노래하는 그리움과 고독함은 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익명의 사람들을 보는게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와 역사를 보게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가 적중하는 지점이다. 

시민 밴드, 2012, 4채널 비디오 설치, 21분 25초, Courtesy the artist, Anna Schwartz Gallery, Melbourne
[제공=아트선재센터]

전시에는 두 작품 외에도 ‘수신자 전원에게 알림’이라는 조각도 선보인다. 1997년 프랑스 해군의 마지막 전신을 구성하는 실제 단음과 장음을 긴 파이프와 짧은 구로 표현한 황동 조각이다. 조각들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전시장에 공명하고, 벽에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소리와 어우러져 발신과 수신이라는 모티브를 시청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전시는 2월 11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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