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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천 개의 서랍이 있다(이은옥 지음, 실천문학사)=등단한 지 20년이 된 이은옥 시인의 첫 시집. 등단작 ‘어성전의 봄’을 포함한 68편의 시가 수록됐다. 일상의 상투성에서 비상하고픈 바램과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의 간극에 그의 시는 자리하고 있다. 표제시 ‘나에게는 천 개의~’(‘나는 매일 외출복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창 안에서 창 밖에서 프랙탈에 빨려 들었고 세상의 부조리에 편승했다’‘기억의 저편마다 사람들이 눈빛이 무진하게 쌓여 가던 어느 날, 관절마다 바람이 찾아와 손톱을 자르고 머리를 자른다’)에는 시인의 오랜 주저와 축적의 시간이 들어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내는 심경을 저자의 말을 통해 “숲속은 여전히 질서정연하게 분주하고 행적을 논하기에는 아직 억울하고 변방에서 서성거리기에는 시간이 다급하고 아직도 두리번거리기만 하기에는 참으로 헛헛”하다고 표현했다. 또 “오랜시간의 갭을 이겨 내며 서랍에 간직해 둔 간극이라는 언어를 불러낼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문학평론가 안지영은 이번 시집을 빈 액자를 채우는 작업으로 설명했다.

미생물군 유전체는 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롭 드살레·수전 L. 퍼킨스 지음, 김소정 옮김, 갈매나무)=몸 속에는 세포수 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 미생물이 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항균제로 미생물과의 전쟁을 치른다 한들 미생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인 저자들은 우리 몸이 얼마나 다양한 경로로 미생물을 접촉하고 받아들이고 이들이 어떻게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통해 들려준다. 가령 비만인 생쥐의 장 미생물군유전체는 발암물질의 생성과 관련이 있으며, 람노서스 유산균을 투입한 생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물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는 연구결과는 미생물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10초 동안 프렌치키스를 하면 평균 8000만 개체가 넘는 박테리아가 이동하고, 자연분만으로 낳은 아기와 제왕절개로 낳은 아기의 미생물군유전체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눈길을 끈다. 면역력, 스트레스, 뇌의 발달 등과 미생물과의 관계, 항생제 남용이 불러오는 결과 등 최신 미생물 연구까지 담아냈다.

짐승(신원섭 지음, 황금가지)=좀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는 장근덕은 편의점 알바로 근근히 살아간다. 술에 취해 간밤의 기억이 가물한 채 깨어난 그는 자신의 방에서 피 흘린 채 죽어있는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자신의 미련스러움을 탓하는 데 익숙한 그는 무조건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앞뒤 따져보지도 않은 채 일을 처리한다. 외진 동네의 허름한 연립주택 지하방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놓고 실타래를 풀어가는 소설은 미스터리 작가 신원섭의 첫 장편소설이다. 사건과 얽혀있는 인물들은 사회 부적응자들이 대부분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데 익숙해 스스로를 바보로, 짐승으로 여긴다. 사건의 해결에 나선 전직 형사 역시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아동성추행 혐의로 직장에서 쫒겨난 상태다. 그 대척점에는 불행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사다리를 영리하게 잡아탄 인물들이 있다. 작가는 개성적인 캐릭터와 잘 짜인 구조, 속도감 있는 전개 등 추리소설의 미덕을 고루 갖추면서 물신이 지배하는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는데도 공을 들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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