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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철이 지키려했던 박종운, 영화 ‘1987’과 함께 주목
박종철 사망 직전 “선배, 박종운 어딨냐” 심문 받아
역사의 아이러니, 박종운 세월 흘러 한나라당 입당

[헤럴드경제=이슈섹션] 영화 ‘1987’이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배경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역시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의 봄’을 이끈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종철 열사가 불법 체포돼 치안본부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들에게 고문·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1987년 한 해는 반군부 독재 시위로 온나라가 들끓었다. [사진=연합뉴스]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87년 1월13일 자신의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경찰이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 열사를 체포한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종운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심문의 내용이었다. 박종철 열사는 그의 거처를 대지 않아 고문을 받게 되었고 다음날 죽음에 이르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지킨 선배, 박종운은 2000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까지 세 번 도전해 낙선했다.

사건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써 군부독재 반대 시위를 이끈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종운에 대해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이 정당을 선택해서 정치활동을 펼치는 것에 대해 변절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박종운이 그 당을 선택해서 갔을 때 박종철의 유가족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들과 같은 진영으로 갔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우 원내대표는 또 “박종운·우상호 같은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 죽음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종운이는 종철이를 생각하면 정치를 안 하든가, 다른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밝혔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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