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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손병석 국토교통부 제1차관]피라미드 노동자들의 복지와 오늘의 건설산업
인류 최초의 파업은 언제 발생했을까?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이집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토리노 파피루스’에 답이 있다. 기원전 12세기 피라미드 건설현장에서 최초의 파업이 발생했다. 원인은 다름 아닌 건설 근로자에 대한 18일 치 임금 체불이었다. 신과 같은 숭배를 받았던 파라오에게도 저항할 만큼 임금 체불은 그 당시에도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 건설산업은 200만 명이 삶을 영위하는, 대표적인 일자리 산업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취업자 10명 중 7명은 속칭 ‘노가다’로 불리는 일용직이다. 다단계 도급 구조로 인한 임금체불 문제와 열악한 근로환경, 부족한 사회보장 등으로 인해 건설 일자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문제들로 건설산업은 청년층이 기피하는 일자리가 되고 있다. 2016년 기준 건설현장 근로자 중 40대 이상의 비율이 역대 최고치인 84%를 기록했다고 한다. 건설업 직업 전망이 어두워 청년층의 취업 기피가 이어지면서 고령화가 심화되고 숙련된 인력의 대가 끊기고 있다. 부족한 일손은 외국 인력으로 메우고 있다. 우리 건설 산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 대책’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한 것이다. 유능한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산업만이 미래가 있다. 건설산업의 뿌리인 현장 일자리의 질 개선을 빼놓고는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현장의 근로자가 제값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일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경력을 관리할 수 있는 건설산업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우선, 공공발주자가 직접 임금을 지급해 적어도 공공 공사에서는 임금체불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계획이다. 체불을 당하더라도 보증기관으로부터 임금을 우선 지급받을 수 있도록 임금지급보증제도 실시한다. 적정임금제를 통해 더 이상 근로자의 임금이 저가 경쟁의 수단이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건설 근로자에 대한 노후 대비와 근로환경 개선에도 나선다. 현장 근로자 중 상당수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만큼 직장가입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할 것이다. 제대로 된 화장실과 탈의실도 없이 일하는 근로자를 위해 편의시설 설치 기준을 세분화할 계획이다. 퇴직 후 노후에 도움이 되고자 10년간 동결되었던 공제부금 납입액도 인상한다.

기능인등급제, 전자카드제를 통해 숙련인력이 대우받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고자 한다. 우리 청년들이 건설산업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체계적인 경력 관리를 통해 성실하게 장기간 근무하면 모두의 존경을 받는 건설 마이스터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다.

물론 일자리의 개선이 사업자의 부담을 일정 부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멀리 보면 이는 지금 건설업체가 겪고 있는 숙련공 구인난의 해법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건설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피라미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피라미드에 관한 기록 중에는 건설 근로자의 휴가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어떤 사람은 전갈에 물려 병가를 냈고, 형의 장례를 위해 현장을 비운 사람도 있다. 너무 더워서 휴가를 냈다는 기록도 있다. 전제군주가 지배하던 고대 국가에서도 제대로 된 시공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근로자에 대한 복지를 중시했던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양질의 일자리는 산업의 근간이다. 건설산업 종사자들이 근로의 가치와 전문성이 제대로 평가받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 계단 한 계단 튼튼하게 쌓아올려 수천 년이 지나도 견고한 피라미드처럼 뿌리가 굳건한 건설산업이 될 수 있다. 민간과 정부가 손을 맞잡고 상생의 건설산업을 만들어 건설산업이 혁신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으로 재도약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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