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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재난사회에 왜 진상규명이 중요한가
2년여만의 남북대화로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아침이다. 남북군사회담까지 개최한다고 하니 군사적 긴장해소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의아하기는 하지만, 뭔가 변화가 있을 거란 기대가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렇게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뉴스가 등장하게 되면 그 전에 우리 사회를 달구었던 중요한 의제들이 잊혀 버린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10일)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사건 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시한이다.

작년 12월에 공포된 특별법에는 30일 내 여야 추천 각 4명과 국회의장 추천 1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지만 적어도 어제까지 추천명단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필자가 특조위에 주목하는 이유는 특별법의 입법취지대로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해지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전혀 다른 사안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에 동질적이라 생각한다.

국민 개개인의 탐욕과 실수로 발생한 사건ㆍ사고를 어떻게 모두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고 사고 발생 시 최선의 구조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예컨대 도로 중앙선의 불법 유턴을 막기 위해 가드레일을 설치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앙선 침범으로 위한 사고의 책임은 운전자 개인에게 있지만 국가는 위험한 곳에 가드레일을 설치해서 사고예방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신속한 조치를 통해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사회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철저한 진상조사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래야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1800 명의 생명과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미 의회는 부시 행정부의 졸속 대응을 비판하면서 재난 발생 2주 만에 초당적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이후 5개월간의 광범위한 진상조사를 통해 다음해 2월 ‘이니셔티브의 실패’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22회의 청문회, 84만여 쪽의 자료검토, 325명의 증인 인터뷰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포스트카트리나 재난관리개혁법’이 제정됐다. 그 덕분에 2011년과 2012년에도 초대형 허리케인이 미국을 덮쳤지만 피해는 크지 않았다.

미국이 부러운 이유는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졸속으로 대응방안을 내놓기보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려는 집요함이다. 개인의 책임에 매몰되기보다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작년 말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이나 사흘이 멀다 하고 발생하는 타워크레인 붕괴사고 또한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가 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문제원인을 파악하는 일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올바른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대처에는 신속해야 하지만 진상규명에는 철저함이 우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고는 인간과 제도, 구조와 문화의 요소가 뒤엉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 두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설령 사람의 문제라고 해도 사람 역시 환경의 동물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진상조사의 일차적 목적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안전한 사회, 건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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