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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계속되는 최저임금 잡음
새벽 시간,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의 한 학교. 방학을 맞아 조용한 대학 중심부를 ‘부와아앙’하는 오토바이 굉음이 가득 메운다. 소리가 멈춘 곳은 본관 옆의 S관, 오토바이에서는 거친 숨소리를 내는 20대 남성이 내렸다.

그는 분주하게 카드를 들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딸각‘, ’보안이 해제됐습니다.’ 그의 손길이 거친 건물 곳곳은 이윽고 불이 들어온다. 이 남성이 보안 카드를 통해 문을 열고, 건물 전체를 점등하는 데 드는 시간은 약 30초 남짓. 불을 켠 남성은 이내 오토바이로 뛰어가 다른 건물로 이동한다. 그곳에선 똑같이 건물이 점등되는 모습이 보인다.

이 학교는 최근 정년퇴임한 경비와 청소 노동자들을 아르바이트 근무자로 채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6480원에서 올해 7530원으로 최저임금이 16.4% 높아졌기 때문이다.

경비 직원이 사라진 건물에서는 학교 여러동을 통제하는 보안직원들이 감시 업무를 맡고 있다. 오토바이를 탄 보안직원이 아침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학교측은 최저시급 인상으로 생긴 부담을 기존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이다. 남은 노동자들의 근무 강도는 부쩍 높아졌다.

올해 들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자 현장에서 업주들이 근로자의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각종 꼼수가 동원되는 모습이 포착된다. 기존 고용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해고되는가 하면, 한쪽에선 인상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생겨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소비자 물가를 올리면서 인건비 상승 탓으로 돌리고 있다.

2018 최저임금 인상은 2020년도 1만원 최저시급 달성을 향한 전초전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최저시급을 인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행초인 올해부터 잡음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정부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존 근무자들의 근로 연속성 보장이 필요하다. 최근 최저시급 인상으로 노동자가 해고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홍익대학교는 최근 4명의 청소노동자를 구조조정했다. 올해 새로운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건물 6곳을 용역 사용 구역에서 제외했고 청소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일선 편의점과 식당 등 영세업체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더욱 빈번하다. 업주들은 최저임금을 받는 국내 근로자를 해고하고, 외국인 불법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근로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이뤄진 최저시급 인상이 되레 근로자들을 내쫓는 빌미가 되고 있다.

사용주들은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다. 높아진 인건비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일선에선 최저시급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물가 상승 바람도 거세다. 서울시내 한 대학가는 피시방 이용시간을 이용료 1000원당 1시간에서 50분으로 10분간 줄였다. PC방 이용료가 16.7% 인상된 셈이다.

한 PC방 업주 오모(44) 씨는 “수년간 이용료를 인상하지 않고 버텼지만, 올해년도 급격하게 오른 최저시급을 감당할 수 없어 이용료를 인상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액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실효성이 떨어진다. 오씨는 “고용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 아르바이트생들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가입하길 거부하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도제식 교육을 통해 인턴과 수습제도가 일상화된 직군이 최저시급을 어기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미용업계가 심각하다. 서울의 한 유명 헤어디자이너 샵에서 수습 디자이너로 일하는 강모(21ㆍ여)씨는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며 120만원 남짓한 돈을 받고 있다. 시급으로 4500원 남짓한 돈이다. 도제식 교육을 표방하는 헤어디자이너 업계는 수습기간이 짧으면 3년, 길면 7년에 달한다. 상당수 근무자들은 군말없이 ‘열정페이’에 기반한 도제 시스템을 거친다. 고용주가 된 선배들은 ‘우리 때도 그랬다’며 최저임금을 외면한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시급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고 반길 일이지만, 정부가 사각지대에 대해서도 힘쓸 필요가 있다”면서 “아직까지 사각지대에 대한 개선이 지지부진하다”고 꼬집었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현장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다수의 노동자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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