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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 카페]청년 vs 기성세대…누가 이들의 대립을 부추기나
80년대 서구 세대전쟁론, 저출산 고령화 탓
한국은 노인 대신 기성세대로 대립구도 형성
세대 갈등을 보는 새로운 틀 ‘세대 게임’ 제시
게임 플레이어들이 만든 갈등의 프레임 인식
기성세대에 사회문제 전가 프레임 걷어내야


#한 경관이 밤에 순찰하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뭔가를 찾는 사람을 보았다. 경관은 그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그는 취기어린 목소리로 열쇠를 찾는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경관은 취객을 도와 열심히 열쇠를 찾지만 열쇠는 보이지 않는다. 경관이 정말 여기서 잃어버린 게 맞냐고 묻자 취객이 답했다. “아니요.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서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저기는 가로등이 없어서너무 어두워요. 안 보이면 못 찾잖아요.”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파울 바츨라비크가 남긴 우화다. 찾고 있는 열쇠가 가로등이 비추지 않는 곳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로등 불빛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프레임의 덫을 말한 것이다.

“나는 광장에서의 대립을 세대 투쟁으로 보는 데 반대한다. 맞불 집회는 어떤 정치 세대, 그러니까 ‘세대 의식을 가지고 정치적 요구를 하는 세대’가 주도한 것이 맞지만, 촛불 집회는 어떤 특정 세대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광장의 대립은 세대 갈등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 세대가 맞불 집회를 주도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세대 게임’에서)

사회학자 전상진은 ‘세대 게임’(문학과지성사)에서 탄핵정국 이후 더 첨예하게 드러난 세대 갈등에 이를 적용한다. 세대 프레임이 이 가로등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대 프레임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돼 사회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은 따져 보지 않고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다.

80년대 서구에서 시작된 세대전쟁론은 진원지가 저출산·고령화다. 인구가 줄고 늙어가면서 국력 추락,성장동력 상실, 부양비 상승, 혁신능력 약화 등의 문제를 야기시킬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노인들이 수적 우세를 내세워 권력을 쥐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켜 나가자 양육세대, 생산세대가 기울어진 운동장과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세대전쟁은 시작된다.

8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 새뮤얼 H. 프레스턴의 ‘아동과 노인-미국 의존층의 갈라진 경로’. ‘이리떼의 제거-젊은이와 노인의 전쟁 위협에 대해서’ 등이 출발점에 놓인다. 이어 2000년대 독일에선 좀 더 과격한 양상을 띤다. 기민당의 청년조직 의장은 초고령 노인들의 고관절 수술비용을 의료보험이 지원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2005년 독일 자민당의 연방의원은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밥상에 자꾸 숟갈을 들이밀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세대전쟁론은 2015년 봄,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민연금의 고갈을 얘기하면서 기존의 국민연금 체계가 “세대 간 도둑질”이라는 표현을 써 불을 댕겼다. 이는 세 달 후 ‘공공 노동 교육 금융의 4대 구조 개혁’이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담화로 정점에 달한다. 임금피크제와 쉬운 해고를 통해 기득권자인 정규직 기성세대가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는 게 골자다. 한국은 영리하게 노인이란 표현 대신 모호하고 특정적이지 않은 기성세대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한 연구에 따르면, 장년층 고용과 청년층 채용이 상관관계에 있다는 가설은 입증된 바 없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세대 프레임, 가로등이 존재한다고 본다. 즉 사회문제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기성세대에 전가시키는 식의 세대 프레임으로 재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는 호의호식하고 있는가. 저자는 극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청년과 노인과 기성세대의 삶 모두힘든 게 현실이라며, 연령의 차이일 뿐인 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립이 사회적 고통의 진원지가 되고, 다른 사회적 대립에는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세대 대립을 절대화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저자의 독창적인 이론인 ‘세대 게임’이 등장한다. 그가 새롭게 뜻을 입힌 ’세대게임‘이란 사람들이 세대를 이뤄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활동과 게임의 판을 짠 집단들이 어떤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세대를 활용해 사람들의 경쟁이나 싸움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말한다. 여기에는 게임에 참여하는 세대 당사자와 게임을 고안하고 설계해 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세대 게임 플레이어가 있다. 저자는 특히 세대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얻는 정치적 수익에 주목한다. 지지자의 환심을 사거나, 어떤 세대를 비난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게 이들의 목적이다. 제로섬 게임인 세대 게임은 자연스레 일어나지 않고 게임을 고안하고 설계해 참여를 독려하는 플레이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세대’인가. 저자는 우선 우리 사회에서 세대 담론이 남용되는 이유를 정체성에서 찾는다. 집합적 정체성으로 흔히 써온 민족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됐고, 계급 역시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정체성을 논할 때 세대가 가장 적합한 용어로 떠올랐다는 것. 특히 세대란 개념은 모호하고 뒤섞어버리는 속성이 있어 두루 쓰기에 좋다는 점이 세대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갔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 대 보수로 나뉜 세대 갈등의 다양한 양상, 맞불 어르신 세대의 등장, 정부의 정책 방향 등을 통해 세대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무엇보다 세대 게임 플레이어들의 판에 휘둘리지 말 것을 경고한다.

“갈등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자체로 무의미한 세대 갈등들을 하나로 겹쳐 보이게 만들면, 우리는 싸우지 않아도 될 일로 격하게 싸워야 할 지도 모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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