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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 카페]며칠 안남은 2017년…시에 심장을 대보라, 더 가까이…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순간, 나는/뉴턴의 사과처럼/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떨어졌다”. 드라마 ‘도깨비’에 소개된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은 시 한 줄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삶의 비의를 엿보게 해주고 감성대를 흔들어놓는 시는 그 좋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다가가기 쉽지 않다. 일상적이지 않은 언어의 도치와 은유 때문에 친해지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시 한 줄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그만큼 한뼘 더 깊어질 수 있다.

문학동네시인선이 100호를 맞아 내놓은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는 다채로운 시들로 가득하다. 앞으로 시인선을 통해 선보일 시인 50명의 시 맛보기 격이다.


표제시인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는 오병량의 ‘편지의 공원’부터, “하루하루 죽어간다고 해서 죽음을 만난 것이 아니듯이,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해서 인생을 만났다고 할 수 없으니까. 아직 나는 인생을 만난 적 없으니까.”(신용목의 ‘결정적인,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나무뿌리 가까이에 심장을 대보라 흙으로 덮이면 덮일수록 뿌리는 내리고 내려 가닿는 데가 닿을 데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이병률의 ‘가을나무’),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무엇이든 씀으로써 별생각 없이 미끄러지는 일상에 불편한 감각 몇이 돋아나길”(서효인의 ‘전장에서’) 등 언어의 아름다움, 언어가 가리키는 어떤 지점을 만날 수 있다.

장석남 시인의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는 감성과 사유 사이를 담담하게 오가는 시가 매력적이다.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바위 살림에 귀화를 청해보다 돌아왔지/답은 더디고/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답은 더디고”(‘소풍’)란 시는 자연에 귀의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의 나의 모습을 리듬감있게 그려낸다. 그런가하면 “누가 시키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나 차돌맹이 하나를 찾아 찬물에 씻어서는/그 새 소금 포대 위에 작년 것과 같이 올려두었지/그러자 흥얼거림도 잦아드는 거였어//그것은 어떤 영혼이었던 거/먼 고대로부터 온 흰 메아리/모든 선한 것들의 배후에 깔리는 투명 발자국”(‘햇소금’)이란 시는 사물에 깃든 신성함과 이를 알아가는 마음자리를 정갈하게 펼쳐놓는다.

김정환 시인의 ‘소리책력’(민음사)은 1년 12달을 시로 풀어낸 장시다.


“슬픔이 벌써 우스꽝스러운 안구(眼球)와 인구(人口)의/꼬부랑 할머니가 가고 있다/눈물이 전부 꼬부랑 선율로 잘도 가고 있다./아직 말라 버렸다고 할 수 없지만 분명/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는 11월의 시로 시작한 시는, “흑과 백의 계단으로 펼치는 피아노/무덤이 있다”는 10월까지 1년을 읊어낸 뒤, “품을 수 있는 것이 슬픔이다”는 에필로그로 장시의 끝을 맺는다. 시간과 세월을 견뎌내 마침내 미래를 품는 슬픔과 희망의 얘기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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