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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하 10도 추위 뚫고 단거리하듯 택배…
본지기자 택배현장 동행취재
오전 7시부터 7시간 물품 분류
1분, 1초 다투며 밤 11시까지…
“왜 빨리 안오나”독촉땐 난감
고객실수에도 분실책임 억울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2층 엘리베이터 앞. 두 손에 택배 물건을 한아름 든 택배기사 김경환(38) 씨가 초조한 듯 엘리베이터를 쳐다보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뛰어나간 그는 사무실 세 곳에 택배를 전달하고는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헉헉거리던 그는 다시 물류차량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보였다. 그는 이 쉼 없는 달리기를 하루에 6시간 넘게 한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던 지난 14일. 초를 다퉈 뛰어다니느라 김 씨는 영하 10도의 강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가 이토록 뛰어야만 하는 이유는 배송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가 물류 터미널로 출근하는 시간은 오전 7시. 이때부터 택배 분류작업이 시작된다. 약 7시간의 작업을 마치고 오후가 돼서야 배달에 나갈 수 있다. 하루에 배달해야 하는 물건은 약 200~300개인데 이를 시간 안에 배송하려면 한 시간에 50개씩 배달해도 부족하다.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오후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집으로 향한다. 

김 씨가 물건을 들고 계단으로 뛰는 모습.

수백 개의 물건을 한정된 시간에 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는 늘 비상이다. 초인종을 눌렀을 때 응답이 없거나 전화까지 받지 않을 경우엔 그의 계획된 동선이 모두 꼬인다. 그 사이 “왜 빨리 오지 않느냐”는 독촉전화가 그를 압박한다. 그래서 그는 “택배가 간다고 연락을 했을 때 부재중이라고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알려주는 고객에게 참 고맙다”고 했다.

가장 억울할 때는 고객 실수로 물건을 잘못 배송해 물건이 분실됐을 경우 물건 값을 모두 배상할 때다. 그는 “택배 물건 하나 배송해서 남는 게 800원 정도인데 몇 십만 원을 물어줘야 하는 경우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반품 물건을 수거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 사무실에 들어가 “반품 수거해야 합니다”고 여러 번 불렀지만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곁에 있던 기자의 마음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반품 수거까지 완료하고 엘리베이터로 돌아왔지만 엘리베이터는 떠났다. 떠난 엘리베이터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그는 거친 숨을 내몰며 계단 쪽으로 후다닥 뛰었다.

한 시간 20분 정도 흘렀을까. 처음으로 한 식당 고객으로부터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가 돌아왔다. 1분 1초와 싸우는 그에게 단비 같은 말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추위가 엄습했다. 히터도 틀지 않은 차량은 밖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계속 뛰다 보면 온몸이 땀이 난다”고 했다. 모자를 벗은 그의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있었다.

추위도 잊은 채 그가 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2년 전 그는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택배기사가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지만 알고보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그저 돈을 못 써서 모아지는 것이었다”며 씁쓸해 했다. “하루 16시간 일하면 돈을 쓸 시간도 체력도 안 생기더라. 인간관계도 끊기고 그저 돈 버는 기계처럼 산다.”

오후 8시가 되자 줄어들 것 같지 않았던 짐칸도 조금씩 바닥이 보였다. 저녁식사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버렸다. 주택가에 들어서니 맛있는 찌개 냄새가 진동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있는 그에게 식사는 언제 하느냐고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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