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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택배기사②]욕설ㆍ폭행 시달려도…“우리는 늘 ‘죄송’해야만 합니까?”
-택배기사 10명 중 6명 “욕설ㆍ폭력 경험”
-“징벌적 페널티 탓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주당 74시간 살인노동…“고객 배려 중요”


[헤럴드경제=강문규 기자] #1. 울산에서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는 지난 여름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고객에게 겪은 수모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이 씨는 오후 3시께 고객 집에 방문 예정이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늘 상품을 보관하던 건물 창고에 상품(비료)을 둔 뒤 상품 도착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고객은 다짜고짜 다른 곳에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이 씨는 고객의 집을 다시 방문해 요청대로 상품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후 이 씨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문자는 불쾌함 그 자체였다. “고맙다”는 말 대신 “잘했어 치타”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씨는 “반말로 나를 동물에 빗대는 게 너무 불쾌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고 서러워했다.

#2. 최근 택배기사와 물건 배송을 놓고 마찰을 빚었던 고객이 모욕적인 문자를 보낸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택배기사가 고객의 황당한 요청을 거절하자 “평생 택배나 하고 살아라”, “OO는 떼라, 넌 여자니까” 등 인격모독과 성희롱 발언 등 폭언을 들었다. 그는 화나고 억울한 일이라며 “택배기사가 우습게 보이나”라며 울분을 토했다.


주당 74시간 살인적인 노동을 감내하는 택배기사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택배기사 10명 중 6명 이상이 폭언이나 폭행에 시달리고 있지만 징벌적 페널티 제도 탓에 참는 수밖에 없다.

15일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지역 택배기사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택배이용자가 알아야 할 택배기사 노동’ 보고서에 따르면 택배기사 56.8%는 고객들로부터 욕설 등 폭언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폭행을 경험한 비율도 6.8%에 달했다.

자긍심도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택배기사의 만족도(5점 만점) 조사결과, 일에 대한 전반적인 자긍심은 2.5점으로 타업종 종사자(3.0점)보다 낮았다. 일부 택배기사들은 ‘고객 등 일부가 자신을 낮은 신분으로 여긴다’는 부정적 자기인식을 보이기도 했으며, 절반은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고객에게 욕설을 들어도 참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징벌적 페널티(벌금)제도를 꼽는다. 고객불만이 생기면 택배기사는 ‘징벌적 페널티’를 받고 최대 벌금 100만원을 내야 한다.

고객과 협의 없이 경비실에 맡겨도, 배송이 늦어져도, 반품회수가 늦어져도, 고객과 말다툼이 있어도, 분실 및 파손이 발생해도, 택배업체는 택배기사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들은 ‘죄송하다’는 늘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하는 현실이다.


택배기사 A씨는 “컴퓨터와 세탁기, 선풍기 등 배달한 물품의 설치까지 강요 받은 적이 있다”면서 “설치는 택배기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했지만 ‘콜센터에 항의하겠다’고 하는 고객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일하다 보면 답답하거나 욱할 때도 있지만 꾹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항의 전화라도 받으면 적잖은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화주사는 물론, 택배이용자들의 배려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라며 “택배기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 택배업계의 제도개선 노력도 중요하지만, 화주사를 비롯한 택배이용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택배기사의 노동현실을 이해하고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74시간이었다. 연간으로 환산할 경우, 연간 총 노동시간은 3848시간이나 된다. 최근 과로사 등 문제가 되는 우체국 집배원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55.9시간보다 훨씬 많다. 2016년 기준 OECD 평균 1인당 연간 노동시간(1764시간)보다 2084시간, 우리나라 1인당 연간 노동시간(2068시간)보다 1779시간 더 일하고 있다.

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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