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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현장 보고서②] 영하 12도 덜덜 떨면서도…“보호시설 안 가요~”
-보호시설 자리 남는데 노숙인이 외면
-술 금지ㆍ 단체 생활에 거부감 표출
-상황 열악해도 강제 이송하면 인권침해
-“트라우마 등 정신치료부터 먼저 해야”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안 갑니다. 안 가요.”

지난 12일 오후 9시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인근에서 만난 노숙인 임모(62) 씨는 보호시설로 가지 않느냐는 말에 딱 잘라 대답했다.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날씨에도 그는 낡은 검정 패딩, 눅눅해보이는 침낭에 몸을 맡긴 상태였다. 목장갑을 낀 손 끝에선 떨림이 느껴졌다. 임 씨는 “단체 생활도, 규칙적인 생활도 (나한테는)맞지 않다”며 “어디 (소속되어)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춥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술과 핫팩이 있으면 얼어죽지는 않는다”며 “그냥 내버려달라”고 말했다. 

노숙인 한 무리가 지하철 서울역사 계단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본격적인 추위 앞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 일부 노숙인이 있어 서울시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호시설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숙식을 제공하는 최소한의 조치마저 종종 퇴짜를 맞는 상황이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등 노숙인보호시설 전체 38곳에서 현재 1000명 안팎으로 추가 수용이 가능하다.

대피소 등을 활용한 응급잠자리 구역도 모두 10곳으로 1226명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노숙인에게 이는 ‘공염불’일 뿐이다.

무엇보다 노숙생활에 익숙해진 이들이 체계적인 일정을 견디지 못해서다.

한 노숙인보호시설 관계자는 “꽤 많은 노숙인이 단체 식사ㆍ청소 등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생활에 익숙하지 않다”며 “대부분은 알코올 중독자인데, 규정 상 술을 제한하니 이를 못 견디는 노숙인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간섭과 단체생활 요소가 비교적 적은 응급쪽방도 시내 5곳 110개를 확보했지만, 이 또한 예상만큼 신통치는 않다.

실제로 한 노숙인은 “혜택을 받는 순간 신상정보가 넘어가 귀찮게 된다”며 “술을 원할 때 마시기는커녕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게 뻔해 (지원 받기를)포기했다”고 토로했다.

한 노숙인이 지하철 서울역사 안에 침낭을 깔고 그 안에 들어가 잠들어 있다.

서울시는 이런 모습을 두고 애만 태우고 있다.

지원을 거부한다고 해 거리에 방치하면 자칫 동사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만큼 시설에 강제로 입소시킬 수도 없다.

지난 5월 정신건강복지법에 개정되며 자해ㆍ타해 가능성이 있다면 경찰과 정신과전문의 등의 소견으로 데려갈 수는 있으나, 제한적인 방편일 뿐이다.

지금은 궁여지책으로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노숙인에 침낭을 쥐어주는 중이다.

올해도 작년처럼 협찬 포함 전체 1500~2000여개가 배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노숙인이 이를 되팔아 술을 마시고 또 받아가는 일이 포착 돼, 올해부터는 침낭에 ‘서울시 구호품‘이라는 글자를 새길 방침이다.

노숙인이 지원을 거부하는 모습을 두고 당초 지원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말도 나온다. 우선순위부터 바로 잡아야한다는 지적이다.

5년 이상 노숙인지원시설에서 근무 중인 한 관계자는 “그간 술에 의존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술을 금지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하면 당연히 좋은 결과를 이끌 수 없다”며 “트라우마 등 정신건강부터 회복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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