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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졸업’선언한‘황금빛’서태수 옭아맨 족쇄 풀고 행복의 키 찾나
한국 아버지에 대한 서사중 특히 공감대를 높여주는 것이 가족 먹여살리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다 보니 돌아오는 것은 외로움과 공허함, 쓸쓸함이라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별로 없다 보니 어느새 성인으로 성장해버린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가깝게 느껴질 리 없다.

뒤늦게 자아, ‘내 인생’을 찾는다고 나서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중년 자아 찾기는 보물찾기가 아니다. 평소 삶의 연장선상에서 가족문화로 영위되는 인생이어야지, 뒤늦게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불협화음이 나온다. 가족들은 뜬금없이 낯선 아버지(남편)를 대하게 된다. 


꿈의 시청률이라는 40%를 돌파한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오직 가족밖에 모르던 아버지 서태수(천호진)는 장남에게 “나 이제 이 집 가장(家長) 졸업이야”라고 말한다. 아내에게도 “당신도 당신 벌어 살어. 나 양미정 당신 벌어먹이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 각자 살어”라고 한다. 지수는 갔고 지안은 안돌아올 거고, 막내도 이미 나갔다. 장남 분가 시키고 아내는 원룸에 가서 살라는 거다.

이 드라마는 가장이 힘들게 일해가며 가족을 뒷바라지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됐을 때 아버지의 노고를 가족들이 인정해주지 않게 되면, 그리고 자식들도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 인생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되면 서로의 인생이 꼬이게 된다. 이걸 경계하자는 것이다.

아버지가 장남에게 “대학졸업하고 해외연수 보내주고, 그렇게 잘해줄 때는 왜 인정안해주냐”고 말하는 것도 더이상 보고싶은 모습이 아니다. 서태수는 노모의 병환 때문에 장남에게 진 빚을 지금 집 보증금을 빼서라도 갚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은 누가 보상해준다 말인가. 요즘 부모들은 말로는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리한 양육과 투자(?)를 했으니 속내는 쿨할 수 없는 집착증을 가지고 있다. 서지태(이태성)도 장남 콤플렉스를 가지고 필요 이상의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 장남과 아버지가 이런 식의 대화를 지속해봐야 서로에 대한 섭섭함을 확인하는 것 외에 아무런 소득이 없다.

그러니 지금처럼 극단적인 가족들의 각자도생이 아니라, 살아나가면서 형편껏 살아야 한다. 남자가 힘든 것은 가장으로서의 의무감보다 오히려 남자에게 사회적으로 짐을 지우는 ‘맨 컴플렉스‘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한다.

서지안(신혜선)이 거주하는 셰어하우스의 한 여성은 지안에게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도 가족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주는 게 아니다.

이 셰어하우스에는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찾아나서는 젊은이들이 많다. 사범대 출신으로 목수가 된 여성, 서울대 출신 고물상,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등등. 흙수저로 태어난 지안이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현실 타협적인 삶을 살았던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을 반추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 서태수가 “다 각자 살자”는 말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가족상 제시라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 인생’을 찾기 위한 중간 과정일 것이다. 가족이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방식이 반드시 따로 사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부모와 이를 당연시 여기는 자식처럼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를 벗고 각자의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소현경 작가의 생각과 구상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구체화시킬지는 궁금해진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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