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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협치 노력은 없고 ‘거래’만 난무했던 내년 예산안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나흘 넘긴 6일 새벽 진통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이 수정예산안에 반발하며 표결에 불참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만으로도 과반수가 넘어 예산안을 처리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예산 규모 역시 정부안(429조원)보다 다소 삭감(1375억원)되기는 했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여야간 핵심 쟁점이 됐던 공무원 증원과 최저 임금 보전을 위한 일자리 안정기금은 사실상 원안 그대로 반영됐다. 여소야대 정국이라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예산 전쟁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완승으로 끝난 셈이다. 한국당은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결과에 반발하지만 이미 배는 떠났다.

한데 그 뒷 맛이 영 개운치 않다. 정치는 협상이고 타협안을 끌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은 협상과 타협이 아니라 뒷거래에 가까운 정치적 흥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의석이 부족한 민주당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에 확실한 대가를 지불하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동력을 얻었다. 호남의석이 유난히 많은 국민의당은 여당의 의도대로 예산안을 처리해주는 대신 호남KTX 무안공항 경유 등의 실리를 톡톡히 챙긴 것이다. 중대선거구제 개편 등에 대한 민주당의 협력도 다짐 받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국당보다 더 강력하게 반대했던 공무원증원과 일자리 안정기금은 ‘거래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뿐만이 아니다. 국민의당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도 상당부분 반영시켰다. 자신의 지역구 숙원사업을 챙기려고이리저리 뛰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용호 정책위의장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지역 건설사업 예산과 관련해 “기재부 예산 담당 국장이 힘들다고 하자 그렇다면 예산 합의를 통째로 깨버리겠다고 압박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금 우리 정치권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이 부여한 캐스팅 보트의 힘을 개인 지역구 챙기기에 동원하는 수준이니 하는 말이다.

국민의당이 짧은 시일내 원내 3당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합리와 상식의 정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보여준 행태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지 몰라도 국민의당이 추구하는 정치 철학과 가치의 훼손을 감안하면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협치의 노력은 외면한 채 정치적 거래에만 몰두했던 민주당, 국가와 미래보다 당리당략 챙기기에 바빴던 국민의당, 완벽하게 무능했던 한국당…. 이번 예산안 처리 전쟁은 정치권 모두가 패자였던 한판 승부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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