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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원ㆍ겸재의 그림…디지털과 외유 ‘성공적’?
간송미술문화재단, DDP서 대규모 미디어아트전
혜원전신첩ㆍ해악전신첩 원본 등 공개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국화가 한창인걸로 보아 햇볕 좋은 가을날이다. 이제 막 약관이나 넘겼을까, 젊은 도령은 윗옷을 다 벗고 바지춤도 챙기지 못하고 앉았다. 맞은편엔 댕기머리 처녀가 겨우 저고리만 추스렸다. 부끄러운지 얼굴도 못든다. 그 사이 늙은 노파가 웃음을 흘리며 도령에게 술을 권한다. 조선의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삼추가연’에 담긴 이야기다. “웃는 노파가 얄밉죠? 그런데 저 술잔을 보세요. 청자입니다. 조선시대에 청자를 쓰는 사람이라, 지체높고 재력 튼튼한 집안이란 뜻이겠죠? 드라마는 물론 디테일까지 살아있는 혜원의 그림은 요즘으로 치면 영화 스틸컷입니다. 한류 드라마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탁현규 간송미술문화재단 학예연구원의 설명이다. 

국보 135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중 월하정인.[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국보 135호 혜원신윤복의 `혜원전신첩`중 단오풍정.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국보 135호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원화 30폭이 공개된다. 보물 지정을 앞두고 있는 정선의 ‘해악전신첩’ 12폭을 포함한 금강산그림 26점도 함께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조선시대 두 거장인 혜원과 겸재의 작품을 디지털과 접목, 미디어아트전으로 선보인다.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바람을 그리다 : 신윤복ㆍ정선’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전시는 24일부터 6개월간 이어진다.

디자이너 이영희는 혜원 화첩의 한복을 고증을 바탕으로 재작해 선보인다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디지털과 만난 조선시대 거장의 작품은 생명력을 얻었다. 쌍검무를 추는 무희의 현란한 동작이 그대로 살아나고, 그네를 타는 아낙의 치맛자락이 나풀거린다. 선비들과 뱃놀이를 나간 기녀의 손가락 사이로는 봄의 강물이 부드럽게 지나간다. 화려한 미디어작품들 사이로 재치 넘치는 작품설명 키워드들이 따라붙는다. #후원에서 #누난너무예뻐 #머리에피도안마른게 #근데왜설레지…작은 그림속 숨은 이야기를 찾느라 시간가는 줄 모를정도다. 혜원 화첩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완성한 한복(디자이너 이영희)도 또하나의 볼거리다.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겸재 정선의 불정대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술ㆍ춤ㆍ사랑ㆍ놀이 등 한양의 유흥과 춘정을 생생하게 전하는 혜원의 세계를 즐기고 나면, 금강산 진경을 담은 겸재의 산수를 만날 차례다. 역시나 미디어아트작품이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이이남 작가는 정선의 ‘단발령망금강’과 ‘금강내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원작 속 금강산의 산과 고개사이 서울의 야경을 채워넣었다. 

겸재 정선의 금강 진경을 모티브로 한 초대형 프로젝션 맵핑 영상`굽은 선은 물결로 살아나고 곧은 선은 산맥으로 일어난다`[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이어지는 겸재의 금강 진경은 그가 얼마나 금강을 사랑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장안사와 삼일호 등 겸재가 여러번 반복해서 그린 그림이 한자리에 모여, 화풍이나 스타일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탁 연구원은 “36살에도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겸재지만 이후에도 같은 장소를 여러번 그리면서 점점 완성도를 높여나갔다”며 “하늘이 내린 천재의 노력은 이런 것이라는 걸 볼 수 있다”고 했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와 겸재 정선의 풍경이 디지털과 만났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바람을 그리다: 신윤복 정선`이라는 주제로 미디어아트전을 개최한다. 사진은 혜원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한 초대형 프로젝션 맵핑 영상 `한양: 멋으로 즐기고, 사랑으로 풍요로워지다`[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전시는 초대형 맵핑영상 ‘굽은 선은 물결로 살아나고 곧은 선은 산맥으로 일어난다’를 마지막으로, 끝까지 관객의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관객의 마음이 떠나지 못하는 곳은 미디어작품이 아닌 겸재와 혜원의 원작이다. 화려한 영상과 색감은 순간적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하지만, 마음은 채우지 못한다. 원작의 ‘아우라’가 더욱 강조되는 지점이다. 전시는 내년 5월 24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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