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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수능 연기 사태가 가르쳐 준 ‘진짜 교육’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이 한 구절은 한자권 문화의 높은 교육열을 보여준 글귀다. 특히 한국 사회는 ‘우골탑’, ‘맹모삼천지교’ 등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부모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미담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의 교육열은 ‘내 아이의 성공’, 특히 입시에서의 성공으로 귀결돼 왔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학부모들은 평균 소득의 25%를 자녀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 OECD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사교육비 수준이다.

그런 한국에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포항 지역에 닥친 규모 5.4의 강진 때문이다. “설마 수능이 연기되기야 하겠어”라는 불안감은 곧 현실로 바뀌었다. 그것도 지진 발생 7시간여 만이다.

포항 시내 고사장 14곳 중 4곳은 사실상 수능을 보기 어려운 상태였음이 곧 드러났다. 연기되지 않았다면 수능 시험이 치러졌을 바로 그 시각에 또다시 여진이 엄습하기도 했다. “포항 지역 수험생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던 정부의 판단은 옳은 것으로 판명됐다.

사실 그동안 입시를 위해 아이들을 한줄로 세우는데 익숙한 우리 교육은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거대해진 ‘괴물’과도 같다. 사실 이들이 치러야 했던 가장 큰 희생은 복잡해진 교육과정도, 널뛰는 수능 난이도도 아니었다. 바로 어른들의 그릇된 ‘교육열’이 그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불행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운 최순실이 그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딸 정유라 양에게 재벌의 지원을 집중시키고 이화여대 고위층에 압력을 행사해 절차와 규정을 바꿔가며 딸을 입학시켰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수험생활 시작을 앞둔 1999년생 뿐 아니라 이 나라 모든 학생들은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정씨의 비아냥은 “결과가 유리하다면 수단을 어찌됐든 상관없다”는 권력층의 비뚤어진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불난데 기름을 부었다. 스스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든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권력이나 돈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그러나 이같은 그릇된 가치관은 비단 권력층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부모들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품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자녀에게 “임대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놀지 말라”고 몰아세우거나 아파트의 담장을 높게 세웠다. 심지어 집값 하락을 이유로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며 장애학생들의 교육권을 박탈하려는 단체행동도 불사한다.

인간의 삶보다 금전적 이익을 앞세우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돈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고 되뇌이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자신보다 약한 친구는 밟고 넘어서야 마땅하다고 느끼게 됐다.

무분별한 학교폭력이 늘어나는 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강자논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이들이 치르는 가장 큰 희생일지도 모른다.

이같은 일은 이번 지진과 수능 연기 사태에서도 재연됐다.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일부 지역의 문제로 1년 이상 준비해온 시험을 미루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포항 특별전형이라도 바라느냐”며 포항 수험생들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갑자기 주어진 1주일에 수험생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포착한 일부 학원가는 스스로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 고가의 ’마무리 특강’으로 이들을 꾀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새벽, 동이 터오는 것처럼 보인다. 수험생활을 시작한 1999년생들은 지난해부터 올 봄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잘못된 교육열이 만든 ‘앙시앙레짐’에 대해 도전했다.

이들에게 공정함은, 자신의 이익에 뒤로 밀쳐둬야하는 하찮은 가치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같은 수험생의 입장에서 포항 지역 수험생들이 겪고 있을 혼란과 불안감에 같이 안타까워하며 “1주일 정도는 함께 기다려줄 수 있다”며 ‘동료 의식’을 발휘한 것 역시 이들의 선택이다.

이들에게 ‘진짜 교육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경쟁’과 ‘억압’을 가르치는 한 ‘헬조선’은 영원히 지속된다. 넘어진 친구를 비웃으며 앞질러나가기 보다 그 친구가 툭툭 털고 일어나도록 손을 내밀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할 때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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