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조선통신사 모시느라 섬이 가라앉을 정도”…유네스코 한일 교류 상징 존중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일본 히로시마현 역사책은 “조선통신사 일행이 오면 ‘섬이 가라앉을 정도’로 성대하게 맞았다. 통신사 일행에 대한 환대가 끝나면 지방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였다”고 적었다.

조선통신사 이방언이 1711년 당도해 “일본 동쪽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승(日東第一形勝:일동제일형승)”이라고 칭송했던 말은 지금도 히로시마현 후쿠젠지 타이초로(福禪寺 対 潮樓)에 남아있다. 조선통신사들이 항해했던 세토나이카이 해역 곳곳에선 11월19일까지 45일간의 일정으로 조선통신사 기념 특별행사가 열리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이라는 14책의 고서에는 일본의 통신사 파견 요청, 통신사 파견 준비 절차, 수행원의 직위와 이름, 일본에 전한 예물의 품목, 일본에 도착한 통신사의 보고 내용과 일본에서 바친 진상품 목록이 빠짐없이 실렸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바쿠후(幕府, 무사정권)의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이다. 이들은 단절된 국교를회복하고, 문화교류를 통해 평화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통신사등록처럼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일체의 기록을 아우른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해 성공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후쿠젠지 타이초로
▶섬이 가라앉은 정도로 모셨다는 조선통신사 옛 숙소 입구 안내판
▶일본측이 그린 조선통신사 일행 그림 중 일부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외교 기록, 여정 기록, 문화교류 기록 등으로 나뉘며 111건, 333점이다.

한국은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국립고궁박물관, 부산박물관에 소장된 63건, 124점을 제출했고, 일본은 48건, 209점을 냈다.

구체적으로는 1783년 변박이 초량왜관을 그린 ‘왜관도’와 신유한이 1719년 통신사로 다녀온 뒤 쓴 ‘해유록’(海游錄) 등이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조선통신사가 일본 각지에서 일본 인사들과 나눈 필담 기록, 바쿠후가 기증한 그림, 조선이 바쿠후에 보낸 공식문서, 통신사의 모습이 담긴 일본 화가의 그림 병풍도 기록물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양국 중앙 정부가 아니라 민간단체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주도했다. 한국에서는 부산문화재단,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조직한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가 주체가 됐다.

양국은 등재 과정에서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평화’와 ‘선린외교’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기록물에 전쟁을 경험했던 두 나라가 상대를 존중하면서 교류를 이어간 방법과 지혜가 응축돼 있다는 것이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에는 당시 사회상과 문화상이 상세하게 담겼다. 300∼500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은 쓰시마에서 배로 오사카까지 간 뒤 오사카부터는 육로로도쿄까지 이동했는데, 이들의 행렬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였다고 한다.

히로시마현청은 지난 3일 조선통신사 흔적을 한일 우정의 상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통신사 전승보전회의’를 열었다. 후쿠젠지 타이초로가 있는 히로시마현 도모노우라 전통마을에서는 조선통신사가 도착하자마자 대접했다는 보명주(保命酒) 시음 기회를 얻을 수 있다.

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