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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청탁금지법으로 지키는 우리 내면의 ‘정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일에 새 정부의 기조를 이같이 설명했다. 대선 기간 내내 강조해온 개혁의 방향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한국 사회의 모습은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권 시기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은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절차가 법에 의해 작동된다거나 재물과 권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동등하게 기회를 제공받는다는 근대적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줬다.

시민들은 항상 권력의 부정부패를 혐오해 왔다. 한국법제연구원의 국민법의식연구조사에 따르면 1991년과 1994년, 2008년의 3차례 조사에서 국민들은 가장 시급히 퇴치해야 할 범죄 1순위로 ‘부정부패’를 꼽았다.

그러나 정작 개인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법에 의한 ‘절차’보다 권한을 가진 공무원 등과의 친분을 이용하려는 이중성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개인적 친분을 넘어 뇌물이나 집단적 압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연줄이 있는데도 활용하지 않으면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씨는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며 “대다수가 ‘배신이냐 의리냐’를 따지는 윤리적 프레임 속에서 자신들의 부당 행위를 정당화했다“고 꼬집었다.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금지에관한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지 1주년이 되면서 ’의리‘를 ’정의보다‘ 앞세워 왔던 한국 사회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 박모(27) 씨는“음료수도 받을 수 없는거냐는 자조섞인 얘기도 나오고, 스승의 날에 아이들이 가져온 초컬릿 조차 받지 못하고 돌려주는 마음이 미안했지만 취지가 좋으니까 감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지난 1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불편하지만 사회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바뀐다면 충분히 그 불편을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홍보팀 직원 김모(38) 씨는 “청탁금지법 실시 이후 예전처럼 기자들과 긴시간 술자리를 가지면서 일 얘기를 하는 게 많이 줄어들었다”면서 “프레스 투어 역시 편하게 주요 매체들만 챙기고 싶지만 법을 위반할까 온라인 매체를 포함해 모든 매체에 오픈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측면에서 청탁금지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대기업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박모(41)씨는 “작년 법 시행 초반에서는 서로서로 알아서 주의하는 면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발이 힘들다는 것이 법 적용 대상자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합의되면서 식사나 선물 등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 적용 대상자와 만나더라도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부정 청탁에 해당되는지 아닌지는 판단하는 의식이 자리잡았다”고 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법안을 처음 제안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생각보다 청탁금지법 1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 법의 가장 좋은 점은 무심코 뭔가 했는데 ‘이게 괜찮은 것인가’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이라며 “우리에게 내면화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환기해준다는 점에서 잘 연착륙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청탁금지법의 목표가 사람들의 행동을 옥죄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첫 걸음을 잘 뗐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학회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은 청탁금지법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선물 교환이 줄었다”거나 “직무 상 부탁이 줄었다”고 답한 응답자도 각각 66.5%, 65.9% 였다.

법 시행에 찬성하는 비율은 시행 초인 83.6%에서 85.4%로 다소 올랐다. 청탁금지법이 ‘우리 동네의 확고한 규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법과 처벌만으로는 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 강력한 처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고 사람들은 언제나 법망의 빈틈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시민과 공직자가 실제로 부딪히는 현실에서 절차를 지킨 이에게 편의와 이익이 돌아간다는 경험이 지속적으로 쌓일 때 ‘의리’ 대신 ‘정의’가 한국인의 의식 속 상석(上席)을 차지할 것이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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