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포스트 단색화가’ 김민정 국내 개인전
현대화랑서 내달 8일까지

한지 위에 동그라미를 그린 뒤 얇디 얇은 향으로 태워 파냈다. 동그란 모양의 한지 가장자리엔 얼룩얼룩한 불의 흔적이 남았다. 수십 수백의 동그라미가 한 화면에서 모이고 흩어진다. 리드미컬 하면서도 명상적이다.

다른 작품엔 힘찬 붓질이 인상적이다. 날카롭고 예리한 선이 살아있다. 그 위로 얇은 한지가 자리잡았다. 붓질한 모양 그대로 종이가 뚫렸다. 붓질한 자국을 따라 불로 태워 파낸 뒤 다시 배접한 것. 종이가 자연스레 줄어들며 핀트가 어긋난 사진같은 효과가 났다. 


“두 명의 자아가 있는거죠. 하나는 충동적이고 급한 나와 다른 하나는 과거를 반성하며 묵상하듯 사는 나”

유럽에서 ‘포스트 단색화가’로 조명받고 있는 작가 김민정(55)이 개인전을 연다. 현대화랑은 9월 1일부터 ‘한지, 먹, 그을음: 그 후’전을 개최한다. 국내 개인전은 2015년 OCI미술관 이후 2년만이나, 상업 갤러리에서 여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FT는 올해 초 한국 단색화를 소개하는 기사를 통해 김민정 작가를 ‘단색화에서 출발한 현대작가’로 서도호와 함께 소개했다. 작가는 “내 작품이 단색화인지는 모르겠다”면서도 “단색화 선생들이 하는 일을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영국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전시도 내년 1월에 예정됐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폰다치오네 팔라초 브리케라시오, 덴마크 코펜하겐의 스비닌겐 미술관 등 유럽 주요 기관에 작품도 소장됐다. 최근에는 영국박물관이 그의 작품 3점을 사들였다.

일찍 유럽으로 유학가 작업활동하며 승승장구하는 작가로 비쳐지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의 삶이 쉬웠던 건 아니다. 이른나이의 결혼, 이혼 그리고 자살까지 감행했던 아픈 과거가 그를 타국 땅으로 밀어냈다. “성공하기 전까진 들어올 생각도 말라”는 어머니 말에 우울증이 와도 우울증인줄도 모르고 작업에만 몰두했다.

“불로 한지를 태우다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죠.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다 타버리니까요. 그리고 저처럼 나약한 인간이 불을 다스린다는 희열도 있지요” 이처럼 ‘공순이’같은 단순작업이 작가에겐 일종의 명상이자 묵상의 도구였던 셈이다.

명상의 힘일까, 잊고 싶은 과거의 상처가 아픔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작가의 표현대로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한지’가 작가의 한(恨)을 위로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어두웠기에 가장 밝고, 가장 무거웠기에 또 가장 밝은 작품들은 한국 여성DNA에 새겨진 ‘강인함’으로도 읽힌다. 10월 8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