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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잡초는 적일까, 친구일까
“끄응~!” 요즘 아침에 일어날 때면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내뱉곤 한다. 계속된 제초작업으로 몸은 천근만근. 어깨와 허리, 무릎에는 크고 작은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처서(8월23일) 이후 풀과의 막바지 전쟁은 이처럼 처절(?)하기까지 하다.

8년 째 유기농과 자연재배를 고수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초작업은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일에 속한다. 해마다 풀을 깎는 데만 보름이상 걸린다. 유난히 비가 자주 많이 내린 올 여름에는 장시간 제초작업으로 악성 피부병에 걸려 보름 간 고생했다. 지난해엔 제초와 김매기 작업을 무리하게 해 허리가 고장 나는 바람에 며칠간 반신불수 상태로 누워 지냈다. 이쯤 되면 풀이 ‘웬수’요, ‘적’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풀은 종종 반가운 친구이자 우군이기도 하다. 지난달 중순께다. 무거운 예취기를 메고 과수밭 풀을 깎던 중 검게 잘 익은 아로니아 열매를 발견하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지난해엔 떼로 몰려다니는 새들에게 열매를 모두 헌납했었던 터라 올해는 사실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처 깎아주지 못한 풀들이 오히려 새들을 경계하고 아로니아 열매를 보호해준 것이다. 필자는 내년엔 아예 이 ‘잡초농법(?)’을 의도적으로 활용해볼 작정이다.

올 여름 집중 폭우 때도 풀들은 우군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리가 끊기고 농경지가 대거 유실되는 등 집중 호우의 피해는 컸다. 다소 비탈진 밭과 마당도 폭우가 할퀴고 간 상처가 깊게 패였다. 하지만 잘라준 풀이 잔디처럼 깔려있던 곳은 아무런 피해 없이 지나갔다.

미국의 생물·토양학자인 조지프 코캐너는 ‘잡초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통해 “풀은 적이 아니라 작물이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마법사이자 작물의 생존터전인 흙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토양의 파수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잡초의 유용성은 ▷토양에 유기물과 퇴비 공급 ▷토양유실 방지 ▷야생동물의 먹이와 서식처 제공 ▷자연경관과 환경보전 기여 ▷작물개량을 위한 유전자 자원 활용 등 매우 다양하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세상에 불필요하고 유해하기만 한 잡초는 없다. 작물이라도 제자리에 없으면 무익한 잡초일 뿐이다. 밀밭에 벼가 나면 벼가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밀이 잡초다. 반면 제때, 제자리에 있으면 잡초라도 유익한 식물이 된다. 봄철 밭 갈기 전 냉이나 친환경 과수밭에 지천으로 널린 민들레와 왕고들빼기 등은 그때, 그 자리에선 결코 잡초가 아니다. 맛있는 건강 먹거리다.

요즘 농사를 업으로 하는 귀농인은 물론 텃밭농사만 짓는 귀촌인도 잡초를 무조건 ‘적’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 처음부터 독한 제초제를 쓰거나 아예 밭 전체를 비닐과 방초매트로 덮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애초 풀과 친구 또는 우군이 될 여지가 없다.

귀농ㆍ귀촌이란 인생1막의 도시를 내려놓고 미지의 농촌에서 새로운 인생2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만큼 불안하다. 이곳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귀농ㆍ귀촌인은 어찌 보면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 살아가는 잡초와 많이 닮았다. 잡초는 온갖 악조건과 시련 속에서도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간다. 잡초를 통해 불굴의 자생력과 안분지족, 공생과 어울림을 배워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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