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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푸드 포비아’ 부추기는 식품안전 수장
토요일이었던 지난 19일 오후 경기 고양의 한 대형 마트 내 계란 판매대. 바로 앞에는 ‘정부의 살충제 검사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정됐다’는 안내문과 검사증명서가 큼지막하게 붙여져 있었다.

이윽고 카트를 끌고 온 두 사람이 판매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녀 사이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학생인 것처럼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오믈렛 먹고 싶은데….” 40대 초반쯤 된 듯한 여성은 대꾸 없이 한참동안 판매대에 놓인 계란과 검사증명서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딸’은 뭔가 눈치챈 듯 나지막하게 “엄마, 달걀 먹어도 되는거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집에 딴 것 많아. 더 맛있는 것 해 줄게”라며 ‘딸’을 데리고 판매대를 지나쳐 갔다. 정부가 브리핑을 통해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곳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부의 발표를, 아니 시중에 나와 있는 계란 자체를 아직 못믿는 모습이었다. 순간적으로 씁쓸했다. 이내 ‘푸드 포비아(food phobiaㆍ음식 공포증)’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한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도 ‘푸드 포비아’가 10위 안에 포함됐다. 최근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햄버거병(용혈성요독증후군ㆍHUS)’ 발생, ‘용가리 과자(질소 과자) 사고’에 이어 ‘살충제 계란 사태’까지 잇달아 터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다. 지난 주말 경기 고양 대형 마트의 한 모녀와 오버랩되는 ‘푸드 포비아’라는 단어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은 이를 보여 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시점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 보자. 이달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류 처장은 “국내산 계란에서는 (살충제 성분인)피프로닐이 전혀 검출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이 나왔다’고 국내에 보도된 지 엿새 밖에 안된 때였다. 당시 류 처장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류 처장의 발언 이후 불과 닷새 만에 ‘국내산 계란에서도 피프로닐이 검출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당시 간담회장에서 류 처장이 “현재까지 별다른 문제는 불거지지 않았지만, 계속 예의 주시하겠다”며 보다 신중한 입장을 밝혔으면 어떠했을까.

지난해 8월 한 매체가 보도를 통해,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이, 올해 4월 한 소비자 단체가 토론회를 통해 살충제 계란에 대한 우려를 잇달아 제기해 왔다는 사실을 류 처장이 미리 파악했다면 그런 ‘호언장담’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류 처장의 말은 계속 호기롭기만해 당혹스러웠다. 이달 22일 국회에 출석한 류 처장은 총리의 ‘질책’을 “짜증”이라고 했다. “식약처가 오락가락한다는 것은 언론이 만들어 냈다”며 책임을 미루는 모습도 보였다.
국민에게 불안감을 준 식품 안전 수장의 발언으로 보기에 경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성이 없어 보이는 태도는 먹거리에 대한 불신을, ‘푸드 포비아’를 더욱 부추길 수 있음을 류 처장은 알아야 한다. “코드 인사”ㆍ“비전문가”라는 잇단 지적이 국민에겐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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