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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력’ 할퀴고 간 자리마다…‘꽃비’가 날렸다
학고재, 민중미술가 송창 ‘꽃그늘’展
“한국사회 모든 비극은 분단서 시작”
작가 인식 전시작 38점에 오롯이 투영
알록달록 뿌려진 꽃 한송이 한송이
전장서 사라진 젊은 넋으로 읽혀 숙연


꽃 비가 내린다. 분단의 현장마다, 어리석은 무력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꽃이 비가 되어 내린다.

‘분단을 그리는 작가’ 송창(65)에게 꽃은 축하의 의미가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꽃상여’의 꽃으로,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런 꽃이 비가되어 내리는 현장은 셀 수 없이 많은 이의 목숨이 스러져간 곳이다. “분단의 구조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라지고 잊힌 사람들에게 산 자의 기원을 전하고 싶었어요.”


민중미술가 송창의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는 송창의 개인전 ‘꽃그늘’을 개최한다.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엔 작가의 초기작을 비롯해 신작까지 회화, 설치 등 39점이 출품됐다. 본관엔 2010년 이후 신작을 위주로 꽃을 사용한 작품이 자리잡았고, 신관엔 도시화의 그늘을 조명한 ‘매립지’시리즈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포착한 실크스크린 작업 등이 배치됐다.

한국전쟁 중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난 작가는 군부독재와 민주화, 산업화 등 말 그대로 격동의 시대를 목격했다. 어린시절부터 삶의 곳곳에서 접한 전쟁의 잔상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80년 광주의 모습도 여전히 생생하다. “군 진압이 끝났다는 소식에 새벽 첫 버스를 타고 광주에 갔어요. 내 가족이, 친척이 여전히 거기 살고 있었으니까요. 전남도청에 도착했는데 관들이 쌓여있었어요. 생떼같은 아들을 잃은 어미는 소리도 못내고 울었죠.”

작가로 살아가면서 이같은 시대적 상황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1980년 광주와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가 되어버린 난지도, 군사정권과 자본주의의 폐혜를 보며 작가는 “역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과오를 반복하는 것이 혼란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분단 체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은 분단의 풍경을 캔버스로 끌고 온 원동력이 됐다.

소나무 껍질을 사용해 조형한 ‘굴절된 시간’(1996)은 분단된 한반도를 상징하는 대표적 작품이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캔버스를 길게 가로 지르며 커다란 소나무가 이어졌다. 작품 중앙 하단부엔 생선을 토막낼 때 사용할 법한 사각형의 식도가 녹이 잔뜩 슨 채 꽂혀있다. 세차게 뻗은 소나무 줄기를 칼로 가차없이 두 동강 낸 듯한 모습이다.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국제정치 역학에 의해 나뉘게 됐음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2000년 이후엔 경기도 연천, 파주, 포천, 철원 등 북한과 가까운 최전방 지역을 탐사하며 그곳의 풍경을 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꽃이 등장한 건 지난 2010년 연천군의 유엔군 화장터를 방문하면서 부터다. 누가 놓아두었는지 모를 오래된 조화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죽어서야 전쟁에서 구조될 수 있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작가는 캔버스에 조화를 부착했다.

‘수상한 꽃술’(2017)이나 ‘연천발 원산행’(2013)엔 꽃비가 내리고, 한국전 당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연천군 남계리 강바닥엔 알록달록한 꽃이 뿌려졌다(‘꿈’(2013)). 꽃 하나 하나가 전장에서 사라져간 젊은 넋으로 읽혀 마음 한 구석이 숙연해진다. 빗물이 흘러내린 듯한 흔적도 눈에 띈다. 작가는 “철책선이라든지 탱크라든지 굳건히 서 있는 대상(분단 체제)들이 녹슬고 헐어서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9월 24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제공=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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