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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군의 명예를 살리자
필자가 군 복무를 했던 것이 벌써 30년 전 일이다. 당시만 해도 군대의 시설이나 보급수준은 참으로 열악했다. 훈련병 시절에는 개인 군화가 없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발에 맞는 군화가 없어서 쩔쩔매야 했다. 경기도 양평의 2월은 낮이라 해도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졌다. 그 혹한기의 날씨에 제대로 된 동계의복 없이 발에 맞지 않는 군화를 신고 훈련을 받아야 했다. 제대 배치받았을 때 처음 만났던 고참들의 서슬 어린 얼굴을 잊지 못한다. 야간집합과 폭력도 종종 감수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힘든 시간을 그나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지휘관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작전장교였던 K대위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군인이었다. 야간작업이 많은 작전과의 특성상 밤새 하기 일쑤였다. K대위는 신혼 초였지만 늘 우리와 함께 했다. 그의 부인은 밤새 고생하는 우리를 위해 찐 감자를 보내주거나 라면을 끓여줬다. 누가 면회오면 관사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해줬다. 병사들을 친형제처럼 대해줬다.

N중령도 잊을 수 없다. 부리부리한 얼굴에 딱 벌어진 어깨의 그는 천상 군인이었다. 대대장으로 오기 전 청와대 경호중대를 맡았을 만큼 군 내부에서 신망도 두터웠다. 사단장과 가까웠기 때문에 부대 운영에도 상당한 자율성을 누렸다. 그런 그였지만 관사에는 병사들이 얼씬도 못하게 했다. 간부들 부인들이 방문하는 것도 사절했다. 주말이면 1호차 운전병은 할 일 없었다. 사적인 일에는 관용차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갑질은커녕 장병과 간부의 사기 진작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이가 그였다.

물론 모든 지휘관이 이러지 않음을 군대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문제는 박찬주 대장과 같은 일로 인해 많은 훌륭한 군인들마저 매도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전쟁터에서 멸사봉공할 수 있는 것도 명예로운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군인에게 명예를 죽이는 일만큼 군을 약화시키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군과 관련, 특히 지휘관의 비행에 관련된 보도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년 전 사사로운 일이 침소봉대되면서 육군대장을 불명예 전역시킨 흑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가. 지휘관의 명예는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군 전체의 사기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사와 준엄한 처벌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하나씩 공개하면서 대중의 관음적 흥미를 유도하는 식의 보도방식은 자제돼야 한다.

이러한 보도방식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군인으로서 본분을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많은 훌륭한 지휘관들까지 모멸감을 들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지휘관들을 힘 빠지게 하는 더욱 심각한 일은 군인의 일보다 처세에 밝고 정치에 유능한 이들들이 앞서 승진하는 일이다. 조직이 잘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조직의 목표에 부합하는 훌륭한 이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하는 인사제도이다. 잘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발전적인 일이며, 정상화의 본질이다.

사실 ‘박찬주 파동’의 본질은 갑질 행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그런 인물이 대장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적 개인’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런 문제적 개인을 도태시키고 훌륭한 인물들이 더 우대받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 있다. 군 개혁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명예로운 군인이 존중받는 인사제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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